한·미·일 자체대책회의 이어 외교장관 통화
송민순 실장 방미…힐 차관보 한·중·일 순방
이달 말 말레이시아 ARF에 관심


북한이 끝내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제2차 미사일 위기가 현실로 드러났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관련국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의도와 미사일의 성격,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외교 채널을 총동원했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또다시 벼랑으로 치달으면서 복잡하게 얽힌 ‘미사일 방정식’을 풀려는 외교 노력도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미·일 3국의 움직임=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5일 새벽부터 3국은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으며 바쁘게 움직였다.

3국은 내부적으로 자체 관계부처대책회의를 가진데 이어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간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내용과 의도, 그리고 후속조치를 협의했다.

3국은 일단 이번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안정을 해치는 도발행위’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메시지도 한목소리로 던졌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는 예상대로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이 신속했다.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유엔 안보리를 긴급 소집,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히고 나서자 일본도 이날 각료회의를 열어 북한 화물여객선 ‘만경봉 92호’의 입항을 6개월간 금지하기로 했다.

미·일은 앞으로 유엔에서의 제재 움직임과는 별도로 조총련계 자금의 북송을 제한한다든지 과거 클린턴 정부 시절 해제했던 대북 제재조치를 부활하는 등 각종 제재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동해상 봉쇄 등 물리적인 대북 압박공세도 구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외교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성명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우리 국민의 대북정서를 악화시키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명치 못한 행위”로 규정하고 심각한 유감을 표명했다.

나아가 “북한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서주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조치는 상황을 보면서 여러 협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정부는 당초 ’민간 교류협력과 정부간 협력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국내외 여론의 부정적 동향을 감안할 때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 등도 ‘미사일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묘한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3국간 외교협의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방미중인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이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라이스 국무장관과 만나 ‘한미간 의견조율’을 할 예정이다.

여기에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5일 한·중·일 3국 순방길에 오른다.

유엔의 움직임과 함께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발걸음도 그만큼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달말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6자회담 참가국 대표들이 대거 참가하는 만큼 북한 미사일 사태를 풀기 위한 다각적인 접촉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장국’ 중국의 미묘한 역할=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된 중국의 다음 수순이 관심거리다.

북한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자 경제지원국인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중국의 설득’을 무시하고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위상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특히 가뜩이나 교착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는 6자회담이 미사일 발사를 고비로 “상당기간 협상국면이 살아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그 의미를 잃어갈 경우 중국의 고민은 늘어만 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게 된 중국이 앞으로 과거보다 북한쪽에 덜 우호적인 행보를 해나갈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북한을 적극 압박해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사일 발사를 규제할 국제법적 근거가 희박한데다 동북아 역학구도를 감안할 때 미국과 일본이 지나치게 결속해 주도해 나가는 상황은 중국에게 유리할 게 없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미국과 일본의 안보협력 강화, 구체적으로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중국의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북한측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한편 동북아 정세가 미·일에 기울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수를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압박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해주는 중재자의 입장에 서서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데 주력할 것으로 외교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는 11일로 예정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평양 방문이 주목된다.

예정대로 북한에 들어가게 된다면 우 부부장은 미사일 발사 이후 처음으로 북한 수뇌부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우 그동안 북한에 대한 미사일 발사 자제를 촉구해온 입장을 감안할 때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는데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의 일방적 독주를 바라지 않는 만큼 한국과 중국 등의 개입으로 상황이 다소 진전될 계기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국면전환에 가세할 가능성도 높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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