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정치학회의 해방전후사 세미나에 참석한 학자들은 “김일성은 6·25 남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일이 소련 스탈린의 지시와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용원 한국교원대 교수의 주제 발표와 참석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김일성이 남침을 준비한 과정은 이렇다. 소련 군부(軍部)와 스탈린은 1946년 7월 “최단시일 내에 소련군의 경험을 전수해 북한에 군사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1948년 2월 8일 김일성이 통수권을 발동해 조선인민군 창설을 선언한 뒤 소련군은 1948년 10월 철수한다. 이때 넘겨받은 장비 등으로 북한군은 4개 사단으로 증편하고, 전차대대를 창설했으며 항공대를 연대 규모로 늘렸다.

그 뒤 1948년 12월 중순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북한·중국의 3국 군사대표회의에서 “18개월 내에 북한군을 남침에 충분하게끔 증강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소련은 특별군사사절단을 북한에 파견한다.

남침 계획은 1949년 3월 5일 김일성·스탈린의 모스크바 회담을 계기로 급진전한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무력에 의한 조선통일방안’에 동의하면서 ‘선제남침’과 ‘유도남침’ 중 유도남침을 선택하라고 권유했다. 김일성은 그러나 8월에 스티코프 소련 대사에게 “대남 선제 공격을 준비해야겠다”고 주장한다.

1950년4월 김일성과 박헌영은 모스크바 비밀 회담에서 북한의 선제 남침에 대한 스탈린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스탈린은 이때 “전격전을 수행하고 공격세부계획 수립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김일성은 4월 25일 “남침작전 세부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한다.

김일성은 이어 5월 13일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만나 남침 계획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다.

5월 29일에는 강건 조선인민군 총참모장과 바실리에프 소련 군사고문단장 사이에 ‘선제타격작전계획’이 완성되고 6월 16일 스티코프를 통해 스탈린의 최종 동의가 떨어졌다.

온창일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소련은 처음에 옹진에 주둔한 한국군 17연대의 선제 공격을 유도해서 남침을 하려 했지만 김일성은 6월 21일 스탈린에게 ‘그 계획을 남조선도 다 알고 있으니까 왕창 그냥 쳐버려야겠다’고 했다”며 “그 4일 뒤 전면기습 남침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권대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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