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차 이산가족상봉이 별 탈 없이 마무리됨에 따라 김영남씨 모자 상봉이 최대 관심사가 된 이번 특별상봉 행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평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씨가 이번 특별상봉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게 남측의 어머니와 만난데다 최대 관심사중 하나였던 자신의 입북 및 전처인 요코타 메구미의 사망 경위에 대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30일 오전까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김영남씨가 29일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자신의 입북 경위인 ‘납북도 의거입북도 아닌 대결시대 우연히 일어난 돌발적 입북’에 대해서는 일단 공식적인 코멘트를 삼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씨를 그동안 납북자 485명 가운데 한 명으로 관리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4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김씨 문제를 제기하는 등 노력한 결과로 상봉이 이뤄졌다는 식의 반응이 정부 안팎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는 그 간의 경위 설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씨의 주장에는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대신 김씨를 납북자로 보는 정부 입장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부측 분위기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가 갖고 있는 민감함과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정부의 접근법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납북자 문제는 그동안 정부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북한이 ‘납북자’라는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을 갖고 예민하게 반응해온 사안이다.

지극히 인도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동족상잔에 이은 적대적 대치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안인데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냉전을 넘어 이념적으로 화해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종석 장관이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핵심현안으로 제시한 이후에도 정부는 명분에 집착하고 사안별로 해결하기 보다는 실리적이며 포괄적인 해결을 추구해 온 게 사실이다. 긴 호흡을 갖고 해결할 사안이라는 논리였다.

납북이냐, 월북이냐도 중요하지만 명분싸움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납북자 가족의 한을 어떻게 하면 신속하게 푸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셈이다.

지난 3월부터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과감한 대북 경제지원과 함께 국내 장기수의 송환까지 병행하겠다는 해법이 제시된 것도 이같은 접근법에 따른 것이다.

이제 막 해결의 실마리를 기대할 만한 초기 상황인 만큼 남북 간에 납북을 놓고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상황판단도 없지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김영남씨의 돌발 입북 주장에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배경에도 이런 논리와 판단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번 상봉이 국내 납북자가족모임 등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상황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정부의 대북 설득작업도 주효했다는 점에 비춰 납북자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반영된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김씨가 기자회견 말미에 한 ‘부탁’에 주목하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씨가 “과거 대결의 시대에는 북남 사이 별별 사건이 다 있었다. 그 과거는 6.15를 계기로 다 털어버렸다. 이제 와서 콩이냐 팥이냐 과거사를 따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밝힌 대목이다.

김씨가 돌발적 입북을 주장하면서 ‘별별 사건’이라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한 것은 우리측에 해석의 여지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을 낳고있는 셈이다.

이런 정부의 정책 기조는 7월 초 납북피해자 지원특별법의 입법예고와 다음달 11일 부산에서 열리는 제19차 장관급회담을 통해 견지될 것으로 전망돼 납북자 문제 해결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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