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人 납치문제 의혹에 적극적인 해명

6.15 6주년을 맞아 상봉규모를 확대해 개최한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북한은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주장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번까지 14차례 치러진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의 가족 상봉이 15차례나 이뤄졌지만 김영남(45)씨처럼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요코다 메구미씨의 남편이었던 김씨를 통해 일본인 납치문제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도를 관철시켰다.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메구미씨의 사망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정신병으로 인한 자살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유골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측이 약속과는 달리 괜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동안 일본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측이 북한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간간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당사자를 통해 증언이 이뤄진 사례는 이례적이다.

일본에 있는 메구미씨의 부모는 “북한 당국의 지령에 의한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생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았지만 1986년 결혼해 1994년 사망할 때까지 8년간 부부생활을 한 김씨의 주장을 ’거짓’으로만 치부하기는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편과 딸까지 나와서 거짓말을 꾸민다고만 몰아 붙이기는 힘들다”며 “김씨의 설명에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김씨와 어머니 최계월씨의 만남을 북한에서 손녀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메구미씨 부모의 완강한 태도와 비교함으로써 이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사확인-상봉으로 이어지는 점진적 해법을 추구하는 남한의 입장과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일본의 입장 중 어느 쪽이 유효한 방식인가를 이번 상봉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납북’과 ’의거입북’ 이라는 두 가지 규정만이 존재하던 전후 납북자 문제에 ’돌발입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

무조건 납북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 의사에 입각한 의거입북만을 주장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돌발입북’이라는 새로운 ’완충지대’를 만들어냄으로써 앞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여 오던 납북자 문제에 적극성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번 상봉에서 김영남씨의 상봉을 통해 납북자 문제 해결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가능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도 거뒀다는 평가도 있다.

미사일 시험발사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남쪽에서 대북지원 연계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이번 상봉에서 김영남씨의 가족 만남을 성사시킴으로써 나름대로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와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의혹의 불씨를 남긴 점은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장기적으로 북한의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씨의 ’돌발입북’ 주장은 메구미씨의 죽음 등에 대한 증언의 신뢰성에 흠집을 입히고 있으며 입북과정에 대한 모호한 설명은 앞으로 남한 내에서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상봉은 김영남씨의 상봉에만 이목이 집중됨으로써 6.15공동선언 발표 6주년을 기념하고 민족공조를 다져가겠다는 의도는 다소 퇴색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다.

한 이산가족은 “김영남씨 가족만 이산가족이 아니다”며 “여기에 온 모든 이산가족들이 김영남씨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