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은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딸은 김일성대 재학생.”

고교생 신분으로 북한에 끌려간 김영남(45)씨가 북한 내에서 살아온 28년간의 삶이 납북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 인생’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씨는 29일 기자회견 및 남측가족과의 상봉에서 “대학도 나오고 지금 중요한 직책에서 일도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두번째 부인인 박춘화(31)씨의 아버지 곧 장인이 평양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양시인민위 부위원장은 남한으로 따지면 서울시 부시장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또한 김씨의 딸 은경(19)양도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 컴퓨터학과에 재학 중이다.

김씨는 “평양에서 큰 평수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다”고도 했다.

이같은 김씨의 ’성공 인생’은 대일(對日)·대남(對南) 전략 차원에서 북 당국의 연출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도 할 수 있지만 상봉현장 곳곳에서 감지된 여러 정황과 김씨의 자신감에 찬 행동은 ’실제 상황’임을 시사한다.

김씨는 어머니 최계월(82)씨에게 산삼을 선물하면서 “어머니 이거, 건강하시라고 제가 마련한 산삼인데, 90년 짜리야”라고 말한 것은 그의 북한내 사회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또 산삼을 비롯해 비단옷감 상자, 도자기 세트, 휠체어 등을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의 팔순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린 것도 기존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타난 여느 납북 어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김씨가 이처럼 납북자 신분임에도 북한 일반 인민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살아온 것은 그가 밝혔듯 특수부문(통일부문 관련 사업)에서의 공로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곧 납북 후 금성정치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 근무하며 ’이남화(以南化) 교육(남파간첩 교육)’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그에 해당되는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납북어부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 끌려가 북한 체제에 쉽게 적응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김씨 자신의 말과 같이 개인적인 노력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씨의 누나 영자(48)씨는 “궁핍함이 묻어나지 않았다”며 “세련되고 멋 있었다”고 평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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