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쪽배를 탔다가 배가 표류해 북한영해로 들어갔다.”

1978년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던 김영남(45)씨는 29일 제14차 이산상봉 행사가 열리는 금강산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북한에 정착해 살게 된 이유를 ’돌발입북’이라고 표현했다.

각종 납북사실에 대해 ’의거입북’이라며 납북자의 자발적 의지에 의한 입북을 강조해 왔던 북한의 입장에 비해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납북자는 없다’며 납북문제에 대해 보여왔던 그동안의 모습 때문에 이번에도 김영남씨가 ’의거입북’을 주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1980년 6월 충청남도 대천 서쪽 120마일 해상에서 뭍으로 침투를 시도하다 적발돼 체포된 뒤 귀순한 김광현씨의 납치 증언이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자발적 입북으로 우기기도 쉽지 않은 일.

그렇다고 가뜩이나 국가 이미지가 바닥인 북한의 입장에서는 김광현씨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할 수도 없을 수밖에 없다.

미성년자인 김영남씨의 납치를 시인할 경우 국제사회의 비난이 봇물터지듯 쏟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시인했다가 일본의 보수적 여론만 키워 북·일관계 정상화마저 어렵게 된 상황을 경험한 북한으로서는 납치를 시인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은 남측의 김영남씨 상봉 요구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지난 8일 가족상봉을 전격 결정하면서 “나무쪽배를 탔다가 배가 표류해 북한땅으로 갔다”는 나름의 중립적 시나리오를 마련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누구의 의지도 아니고 망망대해 속에서 배가 북으로 간 것이고 북한의 무상교육에 반해 김영남씨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북한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한 대북문제 전문가는 “김영남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고 이번 상봉에 임한 것 같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중립적인 정황을 내세운 것에서 고민의 흔적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