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김정일은 정 회장의 자살소동을 한껏 이용하여 한국인들의 동정심과 눈물을 쥐어짜내도록 유도한 노무현 정권은 남북협력기금이라는 미명하에 금강산관광의 입산료를 정부의 보조금으로 지원하도록 여론몰이를 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현대아산측은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입산료의 보조를 받게 되었으며 관광 금액은 종전의 1/3이하로 삭감되었다(현재 1박2일에 18만원).

물론 입산료는 달러로 환산이 되어 김정일의 구좌가 개설된 마카오 등지에 있는 북한측 거래은행으로 송금하게 되었다.

I. 음독자살한 롬멜의 최후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사망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국제칼럼니스트 손충무는 그의 칼럼에서, “정 회장의 사망은 자살의 확률이 50%, 김정일이 25%, 김대중이 25%씩 책임이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여 인터넷 독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고 여러 언론에서도 그의 자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가 사망한 2년 6개월 뒤,『월간조선』(2006년 2월호)에는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의문사를 다룬 기사가 실려서 작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잠정적 결론에서 『월간조선』 취재기자는 “타의에 의한 자살”이 아닌가를 의혹에 쌓인 눈길로 적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에 의하면, 정 회장이 남긴 유서는 모두 5장이었는데, 한 장이 분실되었다는 점, 분실된 유서에는 DJ 핵심실세에 대한 원망과 대북 메시지가 기술되어있었다는 점이다.

또 그는 “강요에 의한 자살로 위장된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정 회장의 죽음을 보면서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뛰어난 장군, 에르윈 롬멜(Erwin Rommel, 1891.11-1994.10)의 죽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롬멜은 1940년 전격전을 통한 파리함락으로 히틀러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전선에서 탁월한 리더쉽을 통해 혁혁한 전승을 거두어 독일에서는 ‘국민의 원수(元帥)’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군의 존경까지 얻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알라메인 전투의 패전이후 롬멜에게 무모한 공격을 독전(督戰)하고 퇴각을 못하도록 강요하여 롬멜은 히틀러의 지도력에 강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전쟁말기에 연합군과 강화를 요구하는 독일 군부의 움직임이 있었고, 롬멜의 친구와 부관이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고 히틀러가 축출된 후에는 롬멜이 국가원수직을 맡아야한다고 권유했다.

롬멜은 그 제안을 강하게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히틀러 암살 모의자들은 히틀러 암살 계획을 롬멜에게 말하지 않았다. 1944년 7월 중순 전투가 한참 치열할 때 롬멜의 차가 영국의 폭격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아 길에서 탈선했다.

차는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그는 머리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 후 8월에 집으로 돌아가 요양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그 사이 1944년 7월 20일에 있었던 히틀러 암살음모는 실패하고 롬멜이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졌다.

히틀러는 ‘국민의 원수’가 자신의 적으로 법정에 출두하고 법정에서 교수대로 보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2명의 장군을 롬멜에게 보내 그가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와 그의 가족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자살을 권유했다.

10월 14일 롬멜은 음독자살하여 일생을 마쳤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의 롬멜의 사인(死因)을 정확하게 몰랐고, 그의 장례는 최고의 국가적 예우로 치러졌다.

II. 의문투성이인 정몽헌의 죽음

롬멜 장군은 잘못된 히틀러의 전쟁도발로 인해 수많은 부하를 희생시켰고, 탁월한 리더쉽을 꽃피우지 못하고 비명에 갔던 것처럼, 정몽헌 회장도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서 햇볕정책이라는 잘못된 대북정책의 일환으로 금강산관광사업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기업자금을 탕진했으며, 결국 자금난으로 현대그룹의 공중분해를 맞이했고,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잘못된 기업가가 되고 말았다.

검찰은 정 회장의 이 자살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정 회장의 죽음에 의문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 의문은 12층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시신 발견 당시 별다른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의문은 정 회장의 유서 내용이 의문투성이라는 점이다. 필체가 휘갈겨 써서 맞춤법이 틀린 곳이 많다.

검찰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마치 누군가 써 놓은 것을 보고 성의 없이 베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의혹이 생기는 유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유서에서 정 회장은 “저의 유분은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랍니다”고 했다.

또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 대해서 칭송하면서 대북사업을 지속해 줄 것을 기원하고 있다.

“명예회장님(정주영)께서도 당신(김윤규)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을 모실 때, 보낸 저희 자식의 한 사람으서 부끄러웠을 뿐입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는데 모든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를 바랍니다.”

유서의 핵심은 김윤규 사장에게 계속 금강산관광을 포함하여 대북사업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정 회장은 왜 유서에서까지 김윤규 사장을 배려하여 그로 하여금 대북사업을 전담할 정도로 그에게 미련이 많았나?

정 회장의 미망인 현정은이 김윤규 사장을 해임한 점을 보면 오히려 김윤규는 대북사업에서 문제점이 많았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세 번째 의문은 사망 직후 방송사의 보도태도에 있다. 정 회장이 사망한 뒤, 공영방송 KBS가 다음날부터 계속 방송한 내용은 “정 회장이 유언에서 ‘자신의 유해를 금강산에 뿌려달라’고 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방영했다.

이 점이 매우 괴상한 구린내가 나는 점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결과적으로 KBS가 불쌍한 정 회장의 죽음을 최대한 이용하여 국민들에게 “금강산으로 빨리 관광하러가라”고 부추긴 꼴이 되었다.

네 번째 의문은 정 회장의 사망 시점에 있다. 현대그룹이 김정일에게 공식적으로 상납한 금액은 5억 달러였다. 『월간조선』에서는 그 당시 10-15억달러의 비자금이 현대그룹에서 조성되었는데, 김정일에게 더 많은 돈이 넘겨졌는지, 아니면 남한의 정치 거물들에게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배달사고로 인해 정치브로커에게 떼이고 말았는지 그 자금흐름의 전모가 검찰에서 밝혀지기 직전에 정 회장이 사망했다고 의문점을 던졌다.

오죽하면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이 빈소를 찾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에게 흐느끼면서, “회장님이 다 막으려고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말했겠나?

그 말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 도대체 정 회장은 무엇을 자신의 귀중한 목숨과도 바꾸면서 막으려고 했던 것인가?

다섯 번째 의문은 정 회장의 미망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태도와 행보이다. 현정은은 “결코 남편이 자살했다는 점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남편의 비밀스런 내면의 심리상태는 아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 고금(古今)의 진리이다. 그녀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나고 나서 백두산 관광에 관한 사업을 협의했지만, 곧 그들의 관계는 틀어지고 말았다.

어쨌든 남편 정 회장이 불의의 죽음 당한 마당에 그녀가 김정일을 불신(不信)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III. 현정은-김정일 대립(對立)과 정부의 중재

남편 정 회장이 대북사업을 하다가 엄청난 무리수를 두어서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정은은 정 회장 시절에 비자금 내역과 현대가 김정일에게 상납한 물자를 전부 파헤치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김윤규 회장의 비리가 적발되어서 그를 해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내부적 문제가 발생했다.

북한의 김정일은 자신에게 전폭적인 협조를 해 왔던 김윤규 사장을 해고했다고 펄펄 뛰었고, 북한은 향후 북한의 관광사업의 파트너를 현대에서 롯데로 교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현정은은 한 때 대북사업의 재검토를 선언하면서 김정일과 대립의 각을 세우는 등 승부를 겨누려했다. 그리하여 남한의 재벌 여걸(女傑)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간의 의미심장한 성(性)의 대결이 있을 뻔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정 회장 시절에서 있었던 현대의 대북사업의 전모(全貌)가 모두 드러날 판이었으나,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중재로 현정은은 평양 김정일과의 진검승부를 피했다.

만약 정 장관이 시재(詩才)가 있었다면, 고려말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선사한 하여가(何如歌)를 각색하여 그는 현정은에게 이렇게 속삭였을 지도 모른다.

“김정일에게 쌀과 비료를 바쳤으면 어떻고, 전기(電氣)를 바치면 어떻소. 또 10억을 바쳤으면 어떻고, 또 20억을 바쳤으면 어떻소. 그것을 이제 와서 밝혀서 세상 시끄럽게 한들 무슨 이득이 있소. 김정일도 우리도 같은 한국인이 아니오? 그러니 서로 다투어서 피를 보는 일이 없이 만수산(萬壽山)의 칡넝쿨처럼 얽혀 우리 민족끼리 오순도순 살아갑시다.”

후일 현정은의 행보를 미루어 볼 때, 현정은의 답신이 “이 몸이 죽고 죽어 백골(白骨)이 되어 흙과 먼지가 되어도 대한민국을 위한 충성심에는 변할 리가 없소”와 같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그녀의 대북사업의 지침서로서 정부에 전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고려말 忠臣 정몽주의 선죽교에서의 비참한 최후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노무현 정부의 중재로 현정은과 김정일의 대결국면은 억지로 봉합된 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IV. 김정일의 손익계산서

정회장의 자살소동으로 김정일이 얻은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산출되었는가? 두말할 것이 김정일은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첫 번째로, 결과적으로 정 회장의 자살소동을 한껏 이용하여 한국인들의 동정심과 눈물을 쥐어짜내도록 유도한 노무현 정권은 남북협력기금이라는 미명하에 금강산관광의 입산료를 정부의 보조금으로 지원하도록 여론몰이를 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현대아산측은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입산료의 보조를 받게 되었으며 관광 금액은 종전의 1/3이하로 삭감되었다(현재 1박2일에 18만원).

물론 입산료는 달러로 환산이 되어 김정일의 구좌가 개설된 마카오 등지에 있는 북한측 거래은행으로 송금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정 회장의 사망은 금강산관광 붐을 조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정 회장 사망이후 얼마후 금강산관광은 100만명을 돌파하게 되었다.

정 회장의 죽음은 가뜩이나 눈물과 인정이 많은 한국인들의 동정심을 유발시켰으며, ‘철조망’ 관광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던 금강산 관광은 국민관광, 효도관광, 통일관광이란 이름으로 윤색되어 널리 선전되었으며, 그 결과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은 더욱 두둑하게 되었다.

정 회장의 사망과 그 이후 남한사회에서 통일운동의 일환으로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바라보면서, 이 사업에서 ‘김정일 대남전략의 의미심장한 전술적 승리’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점을 많은 한국인들은 간과하고 있다.

세 번째로, 이번 사건은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의 실상을 재확인한 셈이다. 정 회장의 사망을 조사한 검찰관계자의 최근 『월간조선』과의 증언에 의하면, 의혹이 있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심층수사를 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결했다는 심증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이한영의 죽음처럼 북한 공작원에게 당한 (자살을 위장한) 타살사건인가?

관계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자기 할 일은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공안당국도 평양의 눈치나 살피면서 김정일의 인질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미 검찰은 국가보안법에 도전장을 낸 송두율과 강정구를 구속, 교도소로 보내는데 실패한 전력(前歷)이 있지 않는가? 군사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던 대한민국 검찰도 이제는 평양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형국이 되고 말았다. 공권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과연 정몽헌 회장은 거물급 정치인의 비자금 천기(天氣)와 은밀한 남북커넥션의 비밀을 누설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가?

정 회장의 비극적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관광 할인 혜택을 받은 한국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북녘 금강산으로 향하고 있다. *

※ 이 글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월간조선≫에 실린 것으로 ≪월간조선≫ 7월호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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