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


◇서병훈 교수

북한은 ‘우리식 인권’ 개념을 내세운다. 근로 인민이 사회주의의 주인이기 때문에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권보다 나라의 자주권이 더 소중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어떤 ‘내재적 논리’로도 공개처형이 자행되고 강제수용소가 존재하는 현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현대 국제법은 인권문제를 국내의 울타리를 넘어 국제 사회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관심사, 나아가 관할사항으로 간주하고 있다.

철학적으로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주류가 되다시피 하는 ‘문화 상대주의’ 입장에 서게 되면 북한의 인권에 대해 미국이 간섭하고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한국인들이 ‘보신탕’을 즐겨 먹는다고 프랑스 사람들이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문화 상대주의자들도 문화적 국경을 넘어 ‘최소한의 보편적 도덕률’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살인이나 사기, 고문, 인권 탄압 등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편성을 근거로 하여 다른 사회의 가치 체계가 변화되도록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의 일각에서 이런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윤리적, 철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그 실효성도 의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반응과는 달리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에 대해 적지 않게 부심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려 한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유엔 ‘인권레짐’과의 관계를 선별적으로 개선하는 등 국제기구의 활동에 일견 협조할 의사를 보이는 것이 그 한 예이다. 2004년에는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형법, 형사소송법 등 국내법을 정비하기도 했다.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이 높은 집단일수록 우군(友軍) 또는 동료라고 여기는 세력의 비판에 대해서는 적극적 수용자세를 취한다.

북한과 그런대로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노무현 정부, 특히 남한 내 진보진영 인사들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기준에 맞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북한에도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설득, 충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서병훈(숭실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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