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어딘가 살아있을것 같으니까…
“비행 사고 났다하면 시신 거의 못찾으니 죽었다고 생각안해…”
“조종사들 대부분이 가족 끔찍이도 아껴 최고 남편이라 여기지”



◇ 공군조종사 미망인 모임인 ‘은나래회’의 박건용·강성희·오경희(왼쪽부터)씨가 함께 나들이를 하고 있다. 이덕훈기자


6·25 전쟁과 남북 분단, 군사적 대치…. 민족의 슬픈 현실은 이 순간에도 많은 한국 ‘아내’들에게 깊은 아픔을 던져주고 있었다.

분단 조국의 하늘과 바다, 땅을 지키기 위해 산화해 간 군 장병들의 그림자 뒤엔 자신의 삶을 희생해 온 아내들이 있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조국 영공(領空)을 지키다 사라진 공군 조종사는 5명. 올 들어서도 어린이날 행사 때 공군 특수비행팀 조종사가 추락했고 지난달 초에는 두 명의 최신예 F-15K 전투기 조종사가 사망해 주변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빨간 마후라’를 이 세상 최고 영예로 알았던 조종사들만큼이나 그 아내들도 세상을 꿋꿋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그들이 두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모임이 ‘은나래회’다. 조종사인 남편이 사망하는 순간 그 부인이 회원 자격을 얻는 ‘비련(悲戀)’의 모임이다.

회장을 맡고 있는 오경희(69)씨도 남편을 조국의 영공에 바쳤다. 1962년 초겨울 베트남전 참전을 앞두고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던 한국 공군에서 수송기를 몰았던 남편 고 서근주 대위는 비행기 이륙 도중 기관고장으로 추락했다. 네 살, 두 살이었던 자녀를 붙들고 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

오씨는 그 이후 잠을 잘 때도 베개가 귀를 가리지 않도록 눕는 습관이 생겼다. 오씨는 “문 소리가 나고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기만 해도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면서 “한 10년쯤은 그렇게 미친 듯 살았다”고 말했다.

은나래회 회원들은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가장 마음 아파했다. 전투기·수송기 등 비행기 사고는 특성상 조종사의 시신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체의 일부라도 온건하게 발견되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

일부 회원들은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부인들이 재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편의 시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종사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에게 ‘인사’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씨는 “사고 나기 전 남편이 꿈속에서 ‘우리 이혼하자’고 했다”면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고(故) 이형곤 소령의 부인 박건용(49)씨는 말을 하는 도중 “지금 당장 현관문을 열고 돌아올 것 같다”며 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지난 81년 8월 4일 아침 남편은 활짝 웃으며 “나 갔다올게” 하고 집을 나섰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후배 조종사를 가르치는 교관 임무를 수행하던 고 이 소령은 훈련 도중 비행기가 경상남도 사천 와룡산에 추락해 사망했다. 결혼식을 올린 지 채 5개월도 안 된 때였다. 행복한 신혼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를 낳을 겨를도 없었던 짧은 추억만 남긴 채….

은나래회 회원들은 “한국 조종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정에선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였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85년 대구 팔공산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나 사망한 고 김병윤 중령의 부인 강성희(53)씨는 “같이 살 때도 그렇게 사고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남편만큼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종사들의 삶은 온통 비행과 가족으로만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오씨도 “남편은 시장을 가도 병원을 가도 언제나 나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녔고 가족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더라”면서 “조종사들은 마치 자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머릿속에 갖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중했던 만큼 미련도 컸기 때문일까. 그들은 남편의 살았을 때 써 놓았던 일기와 메모장, 사진과 앨범 등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됐지만 숨진 조종사들의 부인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가꿔나가는 힘을 갖고 있었다. 망가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면서 아빠 있는 가정 못지않게 자녀를 잘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은나래회 회원들이 모임에 ‘가입’ 하는 시기는 대부분 자녀 나이가 다섯 살 전후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훈련이나 출격 등 비행이 많은 대위나 소령 때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72년 조종사 미망인 3명이 모여 만든 이 모임에는 요즘 서울과 경기, 대구 지역에서 55명 정도가 참석한다. 젊은 회원들을 위로하고 올바르게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매년 6월에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공군 묘역을 청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장일현기자 ihj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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