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 입법에 하원 동의 여부 주목…공화·민주 8년전과 상황 역전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에 따른 위기속에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임명돼 ’페리 프로세스’ 보고서를 만들었던 역사가 8년후인 2006년 대포동 2호 발사 준비 위기 속에 재연될 것인가.

미 상원이 22일(현지시각) 오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민주당 중진의원들이 제출한, 고위급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을 요구한 수정안을 공화당의 찬성속에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페리 조정관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공화당측이 의회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유화적이기 때문에 북한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다고 강력 비판하며, 공화당측 입장도 반영한 통합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한 데 따라 임명돼 활동했었다.

8년후 현재는 민주당측이 부시 행정부가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않아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이 늘어나기만 했다고 역공을 펴면서 역시 통합된 대북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나선 점에서 정확히 역전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결론은 똑같이, 전권을 가진 고위 대북정책조정관이 기존의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를 비롯한 북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할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페리 전 장관을 조정관으로 임명했던 것은 페리 전 장관이 공화당측으로부터도 인정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만일, 상원의 대북정책조정관 법이 하원의 동의도 얻을 경우, 페리 전 장관이 다시 공화, 민주 양당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후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이미 나오고 있다.

◇배경

상원의 대북정책조정관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 이미 의회내에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민주당측의 공세 차원 뿐 아니라 공화당 온건파 사이에서도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북한문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점점 확산돼왔다.

지난 14일 리사 머코스키 상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이 아시아 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방북 허용을 촉구하는 등 부시 대통령의 기존 대북 정책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엔 리처드 루가 상원 외교위원장이 북한관계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며 초안 내용을 공개했고, 짐 리치 하원 국제관계위 아태소위원장은 오래전부터 힐 차관보의 평양방문과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주장해왔다.

민주당측의 최근 움직임으론, 힐러리 클린턴, 칼 레빈 상원의원이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고위급 대통령 특사를 임명할 것을 촉구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 공화·민주 의원들의 공통된 점은 북핵 6자회담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인정하되 그 틀에만 얽매이지 말고 북한과 양자대화와 협상에도 나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협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만일 새로운 대북정책조정관이 생긴다면, 페리 ’1호’ 조정관의 역할로 미뤄 한국을 비롯한 직접 이해당사국과 협의는 물론 북한을 방문해 북한측과 직접 고위대화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망

문제는 상원에서 통과됐지만, 하원에서 통과 여부.

상원에 비해 하원은 당파적 대립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적극 차단하고 나설 경우 하원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더 멀리는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도 부시 행정부의 실패를 부각시키기 위한 공세를 다방면에서 펴고 있고, 이번 대북정책조정관 수정법안도 그 일환이다.

대북정책조정관의 임명은 8년전과 마찬가지로 기존 대북 정책의 실패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엔 정치적 타격일 수밖에 없는 점이 최종 입법화에 걸림돌이다.

게다가 현재의 미사일 위기가 이 수정법안의 입법에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지도 아직 불확실하다.

위기가 극도로 악화될 경우 “그러므로 재검토와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 분위기를 경직시켜 북미 양자 대화와 협상론이 하원에서 발붙일 여지가 없게 될 수도 있다.

다만, 루가 외교위원장의 북한관계법은 행정부의 협상 내용과 범위, 권한을 법으로 너무 구체적으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번 대북정책조정관 수정법안은 조정관 임명을 주요 골자로 하기 때문에 행정부의 거부감이 덜 할 수도 있다.

시간적으론, 11월 중간선거, 10월부터 2007회계연도 시작, 의회의 여름 휴회를 역산하면 이르면 7월엔 입법이냐 무산이냐의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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