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基正 ㆍ 연세대 교수 ㆍ 국제정치학

동아시아 국제정치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둘러싼 긴장 때문이다. 이미 치열한 외교공방이 시작됐지만 지역질서에 던지는 파장 또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태생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내(域內) 끊임없는 군비경쟁도 원인이며,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의 미사일 사태는 이러한 불안정한 지각판의 틈새를 뚫고 분출하려는 화산과 같다.

미사일 파동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은 일본의 행보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이 일본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북한의 기술부족으로 미사일이 태평양으로 날아가지도 못한 채 일본 영토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우려와 조롱이 뒤섞여 있다.

발사를 실행에 옮기게 되면 일본은 극도의 패닉 현상을 보일 것이다.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국제학술회의에서 만났던 일본 중견 정치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이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한다고 열을 냈다.

그 뒤 일본은 ‘보통국가’로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 왔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군사 강국화를 지향하는 일본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 사태를 군사적 문제로 접근하고 자국의 군사적 강화책으로 해결구도를 잡아 가고 있다.

미사일 위기는 동아시아 질서 변동에 무서운 후폭풍을 예감케 한다. 비단 남북한관계나 북·미관계의 양자구도가 경색되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게 되면 동아시아 전반의 안보판형은 무서운 기세로 군사적 대립구도로 치닫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며, 확산방지구상(PSI)을 전면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군비증강 노선은 인접 국가들의 대응적 군비증강이라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더욱 밀착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한 미국의 고성능 X밴드 레이더는 이미 일본에 배치돼 있다.

북한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포착의 시간이 그만큼 짧아졌다. 문제는 미·일 결속의 견제 대상이 현재로선 북한이 되겠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 도발을 격발요인으로 하여 미·일의 반중 연합전선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빛을 감추고 힘을 키우는(韜光養晦)’, 또는 ‘평화로운 발전(和平發展)’의 시기라 믿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그러한 대립전선의 조기 형성이 결코 바람직한 구도가 아니다.

일본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는 북한 전역뿐만 아니라 중국의 군사움직임도 미국과 일본이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태의 진전에 중국은 곤혹스럽다. 위기가 증폭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관리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외교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의무를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도박을 감행하려는 북한에 대해 중국은 ‘이해는 하지만 용납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질서가 대립국면으로 치닫게 되면 중국의 대응은 점점 어렵게 된다.

북한도 자신들의 행동으로 중국이 미·일 동맹의 압박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도 미사일 위기를 남북관계뿐 아니라 지역질서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역질서가 대립국면으로 치닫게 되면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로 어렵게 된다. 실기(失機)하면 후일 외교적 돌파구조차 찾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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