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과 20일 이틀동안 제네바에서 분주한 방문일정을 마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계획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됐지만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거로 화제를 국한한다면 그의 표정에서는 ’구름에 달 가는 듯한’, ’순풍에 돛을 단 듯한’ 여유가 엿보인다.

반 장관은 이곳에서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유엔 유럽본부(UNOG) 소장과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및 캐나다,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스웨덴, 튀니지,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 외교장관 등과 연쇄적으로 회담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새로 출범하면서 각국 외교장관이 대거 제네바에 모인 것을 활용한 것이다.

반 장관은 이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언급했고 군축회의(CD)에서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21일 다음 방문지인 런던으로 떠나기에 앞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반 장관은 뉴욕과 함께 다자 외교의 한 축인 제네바에서 긍정적 시그널을 보았다고 말하고 초심을 지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최대 주주인 미국이나 중국의 지지 여부, 북한 미사일 발사에 국제적 이목이 집중되면서 분단상황이 약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서는 낙관주의자의 시각이 강하다.

그는 한국 외교가 ’총장 만들기’에 ’올인(all-in)하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자 일부러 기회를 만든다는 것은 오해라면서 주어진 기회를 적극 활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4명의 주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현직 외교장관이라는 지위가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P5(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종전처럼 밀실에서 복병을 지명하지 않을까 하는 지적에 대해서도 역시 우려하는 낌새는 없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월드와이드(worldwide)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계획하고 있는 후속 일정이 많다.

이달 30일 감비아의 반줄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유엔 사무총장 후보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이어 브라질과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주요국도 방문한다.

7월말 호주 방문도 검토중이다.

--이번 방문도 캠페인의 일환인가?

▲유엔 인권이사회가 새로 출범한 것을 계기로 방문을 결정했다.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으로서 제네바를 방문한 것은 99년 이후 7년 만이다.

많은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사회와 군축회의 연설, 제네바안보정책센터 강연 등으로 후보의 프로필을 널리 알리고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총장에 선출돼) 제네바에 자주 올 것으로 보는가?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만도 성과다.

이곳에서는 나의 총장 도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었다.

최근 4파전이 돼 상황이 다소 복잡해졌지만 초심대로 10월까지 꾸준하게 지지 기반을 넓힐 생각이다.

--북한 인권 발언을 기조의 변화라고 볼 수 있는가?

▲유엔인권이사회가 새로 출범한 만큼 우리도 국제사회와 인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공유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인권은 국제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는 보편적 가치다.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연설은 북한 인권에 대해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 외교가 총장 선거에 ’올인(all-in)하는 것 같은데

▲그런 오해를 받고 있어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일부러 기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나라가 모이는 기회를 활용할 뿐이다.

유엔인권이사회나 앞서 열린 아프간 지원 국제회의(런던), 유엔 에이즈 대책회의(뉴욕)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아랍정상회담에 참석한 것도 만들어서 간 것이 아니었다.

--선거를 의식한 개도국 지원 공약이 많은 것 같다

▲개도국 지원 약속이 구체적 예산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존 예산에 있던 부분의 비중을 강화하고 있다.

지원 규모는 3년 내에 3배로 늘려 1억달러를 잡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 기준으로는 큰 규모가 아니다.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에는 부응하지 못한다.

우리가 좀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분단국 후보라는 점이 부각됐다.

▲한반도 분단은 벌써 60년이 경과했다.

국제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남북한의 근본 기조는 화해와 협력이다.

장관으로서 분단 과정을 지켜보고 경험한 것은 유엔 총장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분단 상황이) 냉전 당시는 (총장 선출에) 문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먼저 이런 장점을 설명한 경우도 있었다.

--’올인’으로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에 소홀한 측면은

▲어차피 전체 외교활동의 일환이다.

외교활동의 일부로서 같이 가는 것이다.

과거 처럼 대통령 특사도 보낼 수 있겠지만 안 보내고 있지 않은가.

다른 후보들과 달리 현직 장관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입장이다.

물론 외교장관이라 유리한 측면은 있다.

(각종 회의에서) 장관으로서의 능력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유엔 개혁의 청사진은 있는가

▲유엔 개혁 문제는 회원국들의 이해가 걸려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사정이다.

당의 정강정책처럼 내놓은 식이 아니다.

주권 국가들이 모인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유엔 산하 기구들의 인선 문제도 일체 말을 못한다.

코피 아난총장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아주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았는가.

--개혁적 이미지가 강해 보이지 않는다

▲개혁은 회원국이 합의한 큰 틀에서 하는 것이다.

다만 아난 총장의 청사진에서 필요한 것은 승계할 수 있다.

미국에게는 내 비전을 충분히 설명했다.

외교적 경로를 통해서 비전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쪽에서 시그널은 받았는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아직 냉전 시대의 잔영이 남아있지만 협력적 기조에 있다.

한국 후보라서 일방의 비토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남다른 이해를 갖고 있고 그동안 축적된 신뢰도 있다.

이러 측면에서 중국이 (한국인 후보에) 부담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아시아 후보가 대세인가. 복병은 없는가

▲아시아 후보가 대세라고 본다.

지금도 복병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요즘은 (총장선거의)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밀실 선출은 곤란하다는 분위기가 짙다.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 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본다.

총회 의장도 최근 안보리 의장에게 이런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제네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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