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중국측은 이번 방중이 북한의 개방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다.

김정일이 이번 방중기간중 개혁 개방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중국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을 평가한다”고 말한 점 등, 앞으로 북한의 경제정책에 변화 가능성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들이다.

중국 측 인사들은 우선 김정일이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촌(중관촌)을 방문한 데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 지도자가 타국을 방문할 때 정상회담 등 공식행사는 상대국과 협의하지만, 시내 유람이나 관광지 방문 등 비공식 일정은 방문자가 선택하는 것이 관례이며, 김정일의 중관촌 방문도 김정일이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방문지 선택은 김정일의 국내정책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다.



컴퓨터에 상당한 식견



김정일의 중관촌 방문에 대해 중국의 북한경제 전문가는 “그가 중관촌을 방문했다는 것은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은 리엔샹(련상) 컴퓨터 조립라인을 직접 시찰하면서, 컴퓨터와 정보통신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많은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최대 컴퓨터업체인 리엔샹의 생산·판매규모와 기술수준, 중국의 인터넷 보급상황 등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한 IT업계 관계자는 “김정일이 리엔샹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북한에도 그같은 업체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또 중관촌은 정보관련 기업체뿐 아니라 청화(청화)대학, 북경대학, 중국과기대학, 중국과학원 등 연구시설이 집중된 곳으로서 중국 IT산업의 메카라는 점에서 김정일이 많은 시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말했다.

김정일은 무엇보다도 17년 전인 1983년에 방문했을 당시의 거리모습과는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는 상전벽해(상전벽해)의 변화를 한 베이징의 거리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중국 측 인사들은 말했다.

베이징역에서 조어대(조어대)~인민대회당~천안문~중관촌 등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1983년 당시에는 고층건물 하나 없는 삭막한 회색의 거리였으나, 현재는 뉴욕 맨해튼의 오피스 빌딩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디자인의 고층 빌딩들이 줄줄이 들어서있기 때문이다.

숙소인 조어대 국빈관 앞의 부흥로(부흥로)에는 연경(연경)호텔과 장안(장안)백화점, 그리고 중국 인민은행의 웅장하고 예술적인 건물이 좌우에 늘어서있고, 장안대가로 들어서면 민항빌딩(민항대하), 베이징 도서성(도서성·북 시티) 등의 현대식 건물과 완공이 임박한 동양 최대규모의 오피스 쇼핑몰 동방플라자(동방광장)의 우람한 빌딩군이 서있다.

그 건너편에는 홍콩에서 투자빅벤을 연상시키는 항기(항기)센터와 초현대식 중량(중량)광장빌딩 등이 높이 솟아있다. 예술적으로 설계된 초현대식 건물에는 세계적 기업들의 영어 중국어 광고판이 줄지어 있고,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과 호화판 레스토랑들이 가득 차있다.

김정일은 단둥(단동)에서 베이징으로 오는 철로 연변의 발전상을 보고도 놀랐겠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관광거리가 되어 있는 장안대가의 엄청난 변화에서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중국 측 인사들은 전했다. 김정일이 중국 지도자들과 면담하는 가운데 “등소평(등소평) 동지의 노선이 옳았다”고 한 말은 북경의 거리모습의 변화에서 받은 만감이 표현돼 있는 말일 것이라고 외교부 관리들은 분석했다.

김정일은 또 중국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조선은 이제 막 고난의 행군을 끝마쳤다. 앞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말했다.



경제전문가 수행 안해



이번 김정일을 수행한 북한 대표단중에 경제전문가가 없어 의제가 남북정상회담이었고, 특히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을 대동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군사적 측면을 검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측이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을 동석시킨 것은 경제협력 문제 논의와 함께 중국의 대외개방 경제 현황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일의 이번 행적을 볼 때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개혁·개방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방쪽을 선택할 것으로 보이며, 경제 재건을 위해 컴퓨터산업 등 과학기술 분야의 집중 육성에 나설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경=지해범기자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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