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남북교류의 최대 관심사였던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의 이달 말 방북이 연기된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국내외 대북 여론이 악화돼 DJ는 물론 그의 방북을 지원해 온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졌고 미사일 카드를 꺼내놓은 북측도 한창 긴장이 높아졌는데 방북을 수용하기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가는 쪽’이나 ’맞는 쪽’ 모두 지금은 얼굴을 맞대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한 셈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이 미사일 문제와 상관없이 정책 결정자가 아닌 DJ 방북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 애초부터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미사일 정국’과 맞물려 이를 표면화했다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6월 방북 무산 배경은 = DJ방북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의 남측 수석대표였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돌출 상황 때문에 지난 5월에 합의됐던 6월 말(27∼30일) 방북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연기를 공식 발표한 쪽은 우리지만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쪽은 북측이다.

우리 정부는 이달 14∼17일 광주에서 열린 6.15 통일대축전 기간 방북단 규모 등 방북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지만 북측은 평양에 돌아가서 주겠다는 답을 방북 일주일을 앞둔 지금까지 주지 않고 있다.

DJ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남북 접촉과는 달리 경호와 의전 등을 점검하기 위한 선발대의 선(先)방문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는 점에 비춰 이미 물리적으로 방북이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이달 초 갖기로 한 실무접촉이 무산된 것도 북측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이 대답을 미룬 것은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사일 발사라는 초강수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이 재임기간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DJ와의 만남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미사일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 북측은 정책 결정자가 아닌 DJ로부터 특별히 얻을 것이 없고 줄 선물도 마땅치 않아 방북을 회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봤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설득력있게 제기돼 왔다.

실제 20일 열린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국가정보원은 이 같은 북한 내부 기류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DJ 방북을 적극 지원해왔던 우리 정부도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이 같은 지원 입장을 유지할 형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을 쏘겠다고 위협하는 북한과 무슨 대화냐’는 반대 여론이 적잖은 가운데 자칫 무리한 방북 추진은 참여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기조마저 흔드는 상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DJ 방북 연기 분위기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20일 DJ 예방 직후 본격적으로 형성됐다는 점에서 미국의 의견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 방북 언제 가능할까 = 정 전 장관은 “방북초청은 여전히 유효하고 김 전 대통령께서도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해오셨기 때문에 차기 실무접촉을 위한 날짜를 협의하고 있다”며 방북 재추진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단 방북은 북측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든 정리된 뒤에야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처럼 미사일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만남을 추진하기에는 DJ 자신은 물론 북한과 우리 정부 모두에게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열쇠는 북측이 쥐고 있어 보인다.

북측이 만약 미사일 문제와 상관없이 DJ와의 만남을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의 방북은 상당기간 미뤄지거나 아예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초청한데다 ’의리’를 강조하는 북측 정서를 감안하면 아예 없던 일로 하기에도 부담이 따라 분위기가 조성되고 적당한 명분이 주어진다면 방북이 성사될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고령인 그의 건강상태를 감안할 때 여러 분위기가 성숙되더라도 무더위가 예상되는 7∼8월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사일 발사에 대한 긴장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그의 방북론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는 초강경 대북 압박에 나설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 정부도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국면이 전개되는 가운데 북측과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로 DJ만한 인물이 없다는 데 기반한 분석이다.

물론 이 경우라도 북측이 그의 방북을 받아들여야 성사된다.

한편 미사일 정국과 맞물려 DJ의 6월 방북마저 무산됨에 따라 남북 관계는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고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DJ가 방북하면 6자회담과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미뤄져 아쉽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의 큰 흐름은 다음달 11∼14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제19차 장관급회담을 전후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