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방북 초청 여전히 유효”,“북한과 무슨 일 하려면 참 힘들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방북 계획이 또 다시 무산됐다.

당초 김 전 대통령은 4월 하순께 방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우려 제기로 인해 이를 6월로 연기했었다. 순전히 국내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북측의 사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국제사회의 경고와 우려 속에 북측이 미사일 시험 발사 계획을 강행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 장관의 말 대로 ‘돌출 변수’이다.

하지만 북측이 김 전 대통령의 6월말 방북에 소극적이었던 징후는 그 전에도 나타났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열차 방북을 하고 싶다던 김 전 대통령의 직접적 희망 표시가 있었는데도 북측은 안전보장 등의 문제를 들어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또 최종적인 방북 절차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었던 지난 6.15민족통일대축전 기간의 남북 접촉에서도 북측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북에 돌아가서 곧 연락을 주겠다”던 약속은 김 전 대통령측이 마지노선으로 잡아 놓았던 20일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방북 실무 협의를 맡았던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을 불러 “이번엔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사실상 방북 계획 취소 입장을 밝혔다.

그 직전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방북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워 졌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한반도 정세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방북이 의미를 갖거나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게 김 전 대통령이 고민끝에 내린 판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북 계획을 포기하면서 상당히 낙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과 무슨 일을 하려면 참 힘들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며 방북 연기 결정에 따른 진한 아쉬움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그는 “방북은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고, 최적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6월말로 시한을 맞춰 건강을 관리할 정도로 이번 방북에 정성을 쏟았었다.

따라서 방북 연기에 대한 개인적 ‘회한’은 더욱 컸을 것이라는게 주변의 전언이다.

DJ측 관계자는 “왜 아쉬움이 없겠는가”라며 “지난주 광주에서 열린 6.15 행사 및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기간에는 현지 숙소에서 신장투석 치료를 받는 등 방북 예행연습까지 마친 상태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방북 계획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측 관계자도 “개인 자격으로 방북한다는 생각인 만큼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해 나갈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힘을 내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21일 자신의 방북 연기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떠나는 정 전 장관과 최경환 비서관에게 “기자들에게 잘 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 전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북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고 김 전 대통령께서도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해오셨기 때문에 실무접촉을 위한 날짜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도 “북측이 DJ 카드를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준(準) 정상회담’ 성격을 띤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은 2차 남북정상회담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로 북측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때가 되면 또 다시 방북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관측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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