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의 정찰위성은 500㎞ 이상의 고도에서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해낸다.

영화에선 다소 과장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광학 정찰위성의 주역인 KH-12는 10㎝의 해상도(解像度)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0㎞ 상공에서 가로·세로 10㎝ 크기의 물체가 점으로 보여 식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북한의 대포동2호 미사일이 발사대에 장착됐는지, 미사일 주위에 액체연료 탱크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것도 대부분은 이 KH-12 덕택이다.

하지만 천리안을 가진 KH-12도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는 않다. 24시간 내내 북한 상공에서 대포동 시험장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1, 2차례 시험장 상공을 지나면서 사진을 찍은 것이어서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북한도 미 정찰위성이 지나는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때를 피해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또 KH-12는 구름이 낄 때는 힘을 쓰지 못한다. 미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레이더로 구름을 뚫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라크로스’ 위성을 운용 중이지만 해상도는 1m로 크게 떨어진다.

미국은 정찰위성 외에도 RC-135 전자정찰기, 이지스함 등 다양한 정보수집 수단을 총동원해 대포동2호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내로라하는 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도 대포동2호에 액체연료가 과연 주입됐는지에 대해선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미국의 정보수집 수단으로부터 대북 주요 정보의 95% 이상을 받고 있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대포동2호 움직임을 파악한다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거의 ‘까막눈’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매우 제한적인 정찰위성 역할을 하고 있는 아리랑 1호의 해상도는 6.6m. 제법 큰 건물을 식별할 수 있는 정도여서 대포동2호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보의 대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00년 이후 야심 차게 들여온 ‘금강’ 영상 정찰기는 평양 이남 지역까지 농구공 크기의 물체를 파악할 수 있을 뿐 대포동 시험장까지는 볼 수가 없다. 대포동2호와 관련된 한국군의 주요 정보 수단은 북한 내 교신을 엿듣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다.

미국의 정보제공이 없다면 우리는 북한이 대포동2호 발사준비를 하더라도 발사할 때까지 까마득히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04년 9월 북한 양강도 대폭발설 소동과 같은 해 4월 용천 폭발사고 때 미국의 정보 제공이 늦어져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허둥댔던 아픈 경험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정보수집 능력 강화를 위한 큰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미 해상도 1m짜리 정찰위성 2기로 대포동 시험장을 내려다보고 있으면서도 다음달 1기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한다.

내년 초 네 번째 정찰위성이 발사되면 일본은 광학 위성뿐 아니라 레이더 위성도 가동, 전천후로 한반도를 본격 감시할 수 있게 된다. 다음달에야 해상도 1m짜리 아리랑 2호를 발사, 처음으로 1m급 위성을 보유하게 되는 우리보다 크게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협력적 자주국방을 표명하면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한 것 중의 하나가 독자적인 감시·정찰능력의 확보다. 대포동2호 발사징후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질지 궁금해진다./유용원 · 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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