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이 한 아파트를 찾았다. ‘미사일 왕’ 첸쉐썬(錢學森)의 9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1996년과 1999년에도 왔던 장쩌민이 “첸 옹 같은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중국이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자 첸이 대답했다.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전진해 한평생을 인민에게 바치겠습니다.”

▶미국에 1936년 유학간 첸은 “수재 중 수재”로 불렸다. 미 육군 장교,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실험실 공동설립자, MIT 교수로 잘나갔다. 미군의 미사일 개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2차대전 후엔 시민권을 신청했지만 공산당원이라는 혐의로 5년이나 집에 연금됐다. 1955년 귀국한 그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찾아갔다.

“국방을 튼튼히 하려면 우주과학에 투자해야 합니다.” 첸은 양탄일성(兩彈一星·미사일과 원자탄, 인공위성) 개발의 1등공신이 된다.

▶조선중앙방송은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상국 박사에게 은정(恩情) 어린 환갑상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서씨는 넉 달 전 북한이 발사해 세계를 놀라게 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의 개발 주역이었다.

북한은 그를 ‘과학 천재’로 부른다. ‘러시아 대학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러시아의 귀화 종용까지 받았다’고 한다.

▶북한은 1965년부터 국방대학에서 미사일 전문인력을 길러냈다. 1970년대엔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미사일을 몰래 넘겨받으려고 1500명을 파병해 주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을 쏟아 붓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는 데 한 해 3억~5억 달러씩 들어간다”고 말한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파키스탄 칸연구소의 경우 과학자 2000명을 포함해 7000여 명이 일한다.

▶북한 미사일을 ‘날아다니는 전봇대 수준 아니겠느냐’고 우습게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3월 미 의회에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이 정확성과 기동성에서 획기적 도약을 이뤘다”고 증언했다.

스커드미사일 600기, 노동 1호 200기로 개수도 늘어났다고 했다. 북한 미사일 기술은 이미 10여 년 전에 칸연구소가 자기네 핵기술과 맞바꿀 정도였다.

이번에 사정거리 6700㎞에 이르는 대포동 2호 발사에 성공하면 몇몇 선진국을 바짝 뒤쫓는 수준이 된다. 넋 놓고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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