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1회 현충일 追念式추념식에 참석하거나 TV 중계를 통해 추념식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追念辭추념사를 듣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했을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몇 백m 떨어진 곳에 남편을 묻고 아버지를 묻고 형님 동생을 묻은 유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그곳에, 아니 가슴 가슴에 아들을 묻었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추념사를 듣지 않은 게 다행인 듯 싶기도 했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들려온 참석자 일부의 서먹서먹한 박수소리가 적막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더 무겁게 내리눌렀다.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先烈선열들의 崇高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로 시작해 짧고 儀禮的의례적인 추념의 말을 마친 다음 이 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긴 강연을 이어나갔다.

대통령은 추념사의 마지막도 “다시는 불행한 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말로 닫았다.

대통령은 100년 전의 亡國망국이 “이 땅의 爲政者위정자들이 나라의 힘을 키우지 않고 서로 편 갈라 끊임없이 싸우다 招來초래한 일”이라면서 “私利私慾사리사욕 때문이라고도 하고 다름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獨斷的독단적 사상체계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아마 두 가지 다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前史전사를 이렇게 簡略간략하게 마감한 대통령은 ‘대한민국 설립 이후’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다. “해방이 되었으나 東西동서대립의 국제질서가 주된 원인이 돼 나라가 갈라졌고 마침내 同族동족 간의 전쟁이라는 엄청난 불행을 당했다”며 “그러나 우리 민족이 하나로 단결해서 對處대처했더라면 그 엄청난 불행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단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모두가 한목소리로 민족正氣정기와 자주독립, 통일을 외쳤지만 서로를 배제하고 용납하지 못한 채 목숨까지 걸고 싸웠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까지 권력에 이용한 長期장기독재는 결국 4·19의 희생을 불렀다”고 말하고 “5·16과 10월유신, 군사독재로 이어진 불행한 역사도 5·18의 비극을 낳았다”고 대한민국 60년을 要約요약했다. 대한민국 역사가 이런 汚辱오욕으로 얼룩진 역사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하에서 대통령의 이 연설을 듣던 ‘5만4460位위’의 英靈영령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 대부분은 6·25전쟁 때 스무 살 나이로 피지도 못한 채 참호에서 능선에서 강가에서 떨어졌던 꽃봉오리들이다.

자신들의 죽음이 이런 ‘부끄러운 나라’로 만들기 위한 헛된 죽음이었다는 걸 듣고서 어느 넋인들 편한 잠을 이뤘겠는가. 모두가 그 밤 내내 ‘몸 없는 몸’을 뒤척였을 것이다. 옳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이다. 하물며 이념의 안경으로 자기 나라 역사를 裁斷재단하는 말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숨져간 넋들에게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이런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었다고 알리는 告由고유의 자리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라의 어른이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英靈영령들 귓전에 들려준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그 뒤로도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고 利害이해 관계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배제하거나 打倒타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이어졌지만 그 말은 어느 누구의 귀에도 와 닿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날의 잘못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합시다. 용서하고 화해합시다”라는 대통령의 이야기가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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