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제주롯데호텔에서 열린 남북 경협 제12차 회의 종결회의에서 남측 대표 박병원 재경부 차관(오른쪽)과 북측 대표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합의문을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연합

남북이 1년 가까운 줄다리기 끝에 경공업-지하자원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그 간의 협상과정과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협력이 진행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1년 협상 끝 타결 = 경공업-지하자원 협력 구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작년 7월 제10차 경협위 때다. 북측의 제의로 처음 등장했고 당시 합의문에 명시되면서 이른바 유무상통의 경협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북측은 당시 1차적으로 5년 간 학생 교복이나 근로자 작업복, 신발, 비누 등 경 공업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며 남측이 원자재를 제공하면 남측이 필요한 아연, 마그네사이트, 인정광, 석탄 등을 보내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요구 규모는 신발 원자재 6천만켤레분, 화학섬유 3만t, 종려유 2만t. 가격 기준으로 70%가 신발 원자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 후 지난해 8월 24∼27일 평양에서 제1차 경공업 및 지하자원개발 실무협의, 10월말에는 두 차례 총 4일에 걸친 위원급 준비접촉에 이어 제11차 경협위가 각각 열렸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북측 제의로 1월 19∼20일 열린 올해 첫 회담도 이 문제를 논의할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위원급 실무접촉이었다는 점은 북측이 경협 의제 가운데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에 올인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게 만들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이 사업은 우리측이 7천억원 안팎이나 들인 철도도로연결 사업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진통을 겪어왔다. 지난 5월3일 경협위 위원급 실무접촉에서 우리측이 철도 시험운행과 경공업협력을 병행 타결하자고 명확히 제기한 것이다.

5월 13일 철도도로 실무접촉에서 열차시험운행 날짜를 잡은데 이어 5월19일 경공업-지하자원 협력문제에 대한 의견접근을 보고 애초 이번 경협위에서 최종 합의.서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열차 시험운행이 무산되면서 이번 합의문에는 경공업 협력의 조건으로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조건 조성’이 따라붙는 ‘조건부 발효’로 매듭지어졌다.

◇ 협력은 어떻게 이뤄지나 = 우선 유상 제공 원칙에 합의한 것이 눈에 띈다.

우리측이 의복류, 신발, 비누 생산에 필요한 경공업 원자재를 유상으로 제공하면 북측이 남북 지하자원 개발 협력에 따른 생산물과 개발권, 생산물처분권 등으로 상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상환은 대체로 지하자원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하자원 개발권과 생산물 처분권, 기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도 상환 방법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북측이 제공하는 노동력 등 각종 서비스도 상환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상업적 방식의 거래에 해당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주고 받는 바터무역의 성격도 가진다는 점에서 남북 경협의 새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자재 제공규모는 북측이 애초 요구한 품목별 수량 기준이 아니라 우리측 입장대로 총액 기준으로 확정됐고 금액은 올해에 8천만 달러 어치로 됐다.

북측이 애초 요구한 품목 규모가 금액으로 연간 2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 점에 비춰 크게 삭감된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작년 7월에 북측이 제기한 규모의 3분의 1 이하로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첫 해 상환 규모가 명시된 것이다. 원자재 대가의 3%(240만 달러)를 아연괴와 마그네사이트 클링커로 연내에 현물 상환하도록 한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국 간 경협에서 첫 해에 상환이 이뤄지는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금액이 적은 것은 북측의 상환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원자재 대가는 5년 거치 후 10년 간 원리금을 균등 분할해 상환하고 이자율은 연 1%로 하되 연체이자율도 연 4%로 명시, 눈길을 끌었다.

대북 쌀 차관 조건이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에 연리 1%인 것에 비해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원자재와 상환물자의 가격은 국제시장가격에 연동시키거나 쌍방이 합의하는 가격으로 하도록 했고 만일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경공업 원자재의 제3국 수출을 금지하는 조항도 집어넣었다.

지하자원 개발협력의 광종으로는 ‘아연, 마그네사이트 등 합의되는 광종’이라고 명시, 애초 10차 경협위 합의문에 포함됐던 석탄은 개발대상 광종에서 일단 빠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들 광종에 대한 광산 개발 방법을 ‘남북 공동 투자’로 정하면서 추후 총괄 이행기구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협의되겠지만 남북 당국이 참여하는 합영기업을 설립하는 방안 등이 거론될 전망이다.

아울러 개발 과정에서 광물탐사 자료, 굴진.채광.선광 등 설비 자료, 기반시설 자료 등을 북측이 보장토록 합의하면서 북측의 광물 현황 파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남북 지하자원 협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문제는 없나 = 이번 합의서는 큰 그림만 그렸을 뿐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합의서가 발효되면 1개월 내에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을 협의.처리할 총괄 기구를 지정한 뒤 접촉을 통해 세부 문제를 논의하기로 돼 있다.

그런 만큼 불투명성은 여전한 상황이다.

예컨대 경공업 원자재에 대한 북측의 상환방법에 포함된 지하자원 개발권과 생산물 처분권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치 계산이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향후 협의 과정에서 가치를 얼마 만큼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 공산이 크다.

북측은 당연히 현물 상환을 최소화하려면 개발권이나 처분권의 가치를 과다 책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자재의 품목이나 수량은 물론 수송 경로에 대해서도 추후 정하기로 한만큼 특히 수송경로를 놓고 우리측이 열차 이용을 제기한다면 북측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안고 있다.

이와 함께 지하자원 개발이 이뤄지더라도 전력, 도로, 철도, 항만, 용수, 통신등 현지 인프라를 갖추거나 업그레이드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과 자본투자가 필요한 점이 부담이 될 전망이다. 특히 물류비 부담까지 클 경우 수지 타산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연내에 이뤄질 경공업 원자재 제공과는 달리 지하자원 개발의 경우 1년으로는 기반시설도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시간 차이가 상당하게 나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선결 과제는 경공업-지하자원 협력 합의서의 발효 조건인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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