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문제-남북경협 연계’ 강조..정경분리 훼손 우려
군부 입장 공식발표..이례적


북한 군부가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나서 앞으로 남북관계의 향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대변인은 28일 철도시험운행 취소와 관련, 담화를 발표하고 남측 책임론을 재차 강조했다.

이번 담화는 지난 26일 권호웅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의 전화통지문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에 이어 3번째로 나온 북측의 공식 입장으로 다른 때보다 남측에 대한 불만의 수위가 높았다.

특히 북측은 열차시험운행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과 월드컵 응원단 수송, 개성공단 물류활성화 등 세세한 내용들을 거론하면서 남측에 의해 정략적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북 군부의 불만 표출

이번 북측 대변인의 담화는 북한 군부가 남북 간에 이뤄지고 있는 경제협력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대변인은 우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관련해 남측은 북측이 관심을 기울이는 동해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경의선 연결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못마땅해 했다.

동해선 연결은 북측의 제의로 시작된 사업으로 북측은 동해선을 통해 러시아로 이어지는 철도노선을 연결함으로써 러시아로부터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여기에다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이 애초 청사진과는 달리 속도가 더딘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군사회담 북측 대변인은 담화에서 “개성공업지구 건설만 놓고 보아도 남측이 내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우리가 넓은 부지를 떼내어준 이후 평토작업이나 해놓고 한쪽 모퉁이에 시범공단이나 운영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건설사업처럼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특히 대변인이 “(남측의 정략적 기도를) 우리 군대는 간파한 지 오래다”라고 밝힌 점은 군부가 그동안 남북관계의 변화를 지켜봤고 그 과정에서 불만이 누적돼 왔음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군사문제-남북경협 연계

이 같은 북측 군부의 불만은 군사적 신뢰구축과 남북 경제협력의 연계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변인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서해 해상충돌과 같은 중핵적인 군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달라붙겠다는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때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가 제대로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남북 철도연결사업 등이 제대로 풀리기 위해서는 제4차 장성급회담에서 북측이 제기한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 문제에 남측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결국 군사문제라는 정치적 사안을 남북 경제협력 추진에 연계시켜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KIDA)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3,4차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해결하면 군사보장 등 여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북한은 이번 열차운행 취소를 통해 NLL 문제를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북측의 논리로 인해 앞으로 남북 간 교류에 북한 군부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변인은 또 담화에서 “현 시점에서 우리 군대가 평화적인 열차시험운행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라고 말해 열차 시험운행을 군부가 취소했음을 분명히 했다.

또 일각에서는 북측의 연계론이 국민의 정부 이후 이어져 내려온 ’정경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협력을 통해 우선 상호 신뢰를 다지고,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적 현안을 풀어나가겠다는 것이 정경분리 원칙임에도 북측이 난제 중의 난제인 서해 경계선 문제를 제기해 남북 경제협력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에도 북측의 이 같은 입장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례적인 군부 입장 발표

이번 담화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 군부가 이례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는 점이다.

대변인은 ’우리 군대’라는 표현을 7차례나 사용하는 가운데 “열차시험운행이 중지되고 그로 인하여 엄중한 후과가 빚어진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우리 군대의 공식입장을 밝히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북한의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등이 북미관계 등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사례는 있어왔지만 남북군사회담 대변인이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군부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대변인은 “우리 군대는 남측의 금후 태도를 예리하게 주시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방관만 하지는 않겠다는 점도 적시했다.

이날 담화의 배경과 관련, 열차시험운행 취소 이후 남측에서 북한 군부 책임론이 강력하게 제기되자 북측 군부가 ’책임 떠넘기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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