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일방적 통보로 열차 시험운행이 무산되면서 제1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29일 개성에서 열릴 예정인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제2차 실무접촉도 중요하지만 경추위는 남북경협 전반을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향후 남북관계 전반을 가늠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추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철도시험운행을 논의하는 철도 도로 연결 회담체의 상위 회담인데다 이번 12차에는 걸린 현안이 많다는 점에 있다.

경공업-지하자원 협력, 한강 하구 골재채취 문제, 민족공동 자원개발 문제, 개성공단 건설사업 등 현안이 즐비하다.

결과적으로 시험운행 무산 이후 남과 북이 각각 고민 끝에 마련한 대책과 입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우선 관심은 경협위가 예정대로 열릴지에 쏠려 있다.

남북은 애초 5월 중 경추위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우리측 지방선거 일정을 감안, 다음 달 1∼4일 제주도에서 여는 쪽으로 공감대를 이룬 상황.

그러나 열차 시험운행이 무산되면서 상황은 다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열차 시험운행이 반드시 이뤄진다며 준비작업을 진행했던 북측 내각과 대남라인이 경협위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북측 내부 결정으로 시험운행이 무기연기된 상황에서 무슨 염치로 나올 수 있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북측은 이번 일로 남측의 대북 여론 악화와 맞물려 통일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는 점을 감안, 군사보장조치에 대한 군부의 답을 구하지 못한 채 경협위에 나와봐야 별 소득을 올리지 못할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당분간 완충기를 가지려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북측이 경협위에 걸려 있는 경공업 원자재 사업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론도 팽팽한 상황이다.

아울러 남측 지역에 오기가 부담스러운 점을 고려, 정세 문제를 거론하면서 개최장소를 우리측 지역이 아닌 개성으로 바꾸자고 제의해 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예정대로 회담이 열린다면 양측이 어떤 식으로 해법을 모색할지도 관심거리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에 결자해지 차원의 해결을 촉구하고 여러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측 대책의 골격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험운행에 대한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동시에 그 전까지는 추진해 왔던 몇몇 경협사업을 ‘유보’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여러 조치’에는 당장 지난 13일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의 합의문에 시험운행 방안과 함께 들어 있던 추가 자재 지원의 보류가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북측 역사(驛舍) 건축 마무리와 개성역 배수로 공사에 필요한 10종 60개 품목으로, 우리 돈으로 40억∼50억원에 이른다.

이와 함께 그동안 남북 간 협의에서 철도시험운행과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사업이 맞물려 있었던 만큼 북측이 제기한 신발, 의류, 비누 등 3대 경공업 원자재 지원 요구가 시험운행을 촉구하는 지렛대로 ‘재활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공업-지하자원 사업의 이행방안은 지난 19일 경추위 제4차 위원급 실무접촉에서 시험운행을 위한 세부계획에 합의하면서 상당한 의견접근을 봤지만 최종합의를 경협위로 미뤄놓은 상태다.

아울러 우리측은 지난 달 제18차 장관급회담에서 올해 쌀 차관 50만t을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수용하지 않은 만큼 경협위의 핵심 의제인 쌀 차관 문제도 활용 가능한 카드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 수송작업이 한창인 비료 20만t 지원은 인도적 취지에서 이뤄진 것인 만큼 계획대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경추위가 예정대로 열린다면 시험운행을 장담했던 북측 경협라인 관계자들이 우리측에 대해 어떤 고민을 털어놓고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관심거리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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