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열차 시험운행 전격취소
정부 장비등 대북지원 규모 줄일수도
6월로 예정 DJ 열차訪北 어려워질듯


북한이 경의·동해선 열차 시험 운행을 24시간 앞두고 전격 취소한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북방한계선(NLL) 재설정을 의미하는 ‘서해상 충돌 방지’를 이유로 들었지만 다른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 큰 것 얻어내려?

남북한은 지난 12일 열차 시험 운행을 위한 세부 절차에 합의했다. 경의선에 이종석 통일부 장관, 동해선에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탑승하는 것을 비롯해 분(分) 단위까지 정밀한 의견 일치를 봤다. 남북한은 이를 19일 경제협력추진위에서 정식으로 서명했다. 그 이후에도 북한의 시험 운행 준비는 ▲동해선에 시험 운행용 열차 투입 ▲경의선 철도 주변 정비 등으로 진행해 왔다는 것이 통일부측 설명이다. 23일 낮까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바로 23일 저녁 북한측은 군사 당국자 채널을 통해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

시험 운행을 위한 구체 절차 합의나 시험 운행 취소나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의 주요 현안은 김 위원장이 직접 결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11일 만에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을까.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북한 군부의 체제 수호 의지가 확고하다는 측면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다”고 했다. 북한 군부가 김 위원장에게 건의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군사보장합의서 없는 시험 운행’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북한 군부가 강력히 반발했을 것이란 관측도 같은 맥락이다.

“더 큰 것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김경웅 민간남북경제교류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오판

정부가 너무 긍정적 사인에만 몰입한 것 아니냐는 정황도 있다. 통일부는 23일 오전 ‘명단을 서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군사보장조치를 갈음하자’는 뜻의 전통문을 북쪽에 보냈다. 이에 대해 북측 대남 협상 라인은 “24일 오전까지 답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북한 군 당국이 23일 오후 우리 군에 불가를 통보했음에도 정부는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당국자들은 24일 공식적으로 취소 통보가 온 뒤에까지 “낮 12시까지 지켜보자”는 식으로 기대를 버리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열차 방북 무산

이번 북한의 조치로 김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은 어려워진 것 같다. 북한이 김 전 대통령 방북 실무 접촉 대표단에 “비행기로 오시라”고 했음에도 정부는 열차 방북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었다. 김 전 대통령 본인의 뜻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운행조차 취소한 북한이 상징성이 특히 강한 ‘열차 방북’을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 지원 줄이나

신언상 통일부 차관은 이날 정부가 북에 주기로 한 자재 등 50억원 상당의 장비 지원을 비롯해 대북 지원에 미칠 영향과 관련, “관련된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철도와 연결된 장비 지원은 시험 운행과 연계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다른 대북 지원과 이 문제를 직접 연결시킬지 여부는 좀더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이번 사태를 다른 지원과 모두 연계하면 남북관계가 올스톱될 것”이라고 말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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