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변호사

최근 모 국회의원 보좌관이 영해를 침범한 북한 선박과 우리 해군 함정 사이의 교신내용을 유출하였다는 이유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방부의 한 보고자료에 따르면 2000년 12월 현재 군사기밀은 1~3급 모두 56만1924건으로, 이 중 1급 비밀 8건, 2급 비밀 29만1011건, 3급 비밀이 34만2905건이며, 대외비까지 포함한 비밀문서는 모두 110여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가히 군사기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할 만하다.

군사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는 1972년 12월 26일 비상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법률 제2378호로 제정, 공포된 군사기밀보호법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군사기밀보호법은 「군사기밀이라 함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관련 문서·도서·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 또는 물건으로서 군사기밀이라는 뜻이 표시 또는 고지되거나 보호에 필요한 조치가 행하여진 것과 그 내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군당국이 이번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선박과 해군과의 교신내용을 군사Ⅲ급 비밀로 분류하였다면, 이것은 위 군사기밀보호법 시행령 별표 상의 Ⅲ급 비밀 제3호에 해당하는 「상황발생에 따른 일시적인 작전활동」에 해당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위 시행령 Ⅲ급 비밀 제3호가 지정할 수 있는 「작전활동」이란 아군 상호간의 교신내용을 포함하는 작전활동으로, 적이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작전활동」을 군사기밀로 분류한다면 적어도 상대방인 북한 당국이 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아군과 북한 상선과의 교신내용에 대해 북한 당국은 상선으로부터 보고를 받아 이미 공지의 사실이 돼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군당국이 우리 국민들에게만 유독 군사기밀로 분류하고 이를 보호하려 한다는 것은 과연 이러한 조치가 누구의 안전보장을 위한 것인지에 대하여 국민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이러한 조치는 군사기밀보호법령의 목적과 쉽게 부합하지 않는 것이므로 결국 위 교신내용 자체가 법규상 군사기밀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대법원 판례도 국가보안법상 군사기밀누설죄에 관하여 「국가기밀이라 함은 우리 나라의 국방정책상 북한 공산집단에게 알리지 아니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이익이 되는 모든 정보자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 결국 상대국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국가기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도 위 주장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군 당국은 이를 군사기밀로 분류하였으면 그 전체를 공개하지 않아야 함에도 교신내용 중 비교적 비난 가능성이 적은 부분은 적극적으로 공개하면서도 비난이 집중되리라 예상되는 부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국회의원 보좌관에 의하여 공개되자 그를 군사기밀보호법위반으로 조사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정부나 군 당국의 이러한 조치는 결국 국가안보만을 위한 것이 아닌 영해침범에 대한 소극대응이라는 국민적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비밀분류는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개방화·초고속 정보화시대에 과연 우리 군당국이 이전의 잣대로 군사기밀의 생산단계부터 적용, 해제에 이르기까지 타당하고 공정한 절차로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