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클럽 간담회서 언급…“리비아해법 북핵해결에 도움안돼”

현 정부들어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주미대사를 지냈던 한승주(韓昇洲) 전 대사는 18일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 우리 정부가 기권 또는 불참해 온데 대해 “첫 단추가 잘못 꿰진 것”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한 전 대사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미클럽 주최 전 주미대사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 현재 한미 양국의 접근법에 괴리가 있고 서로 상대방 접근법이 틀렸다고 비난하는 상황임을 언급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인권 결의안에 대해 기권 또는 불참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태도를 바꾸면 큰 정책변화나 대북 적대행위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말을 처음부터 쓰지 않았더라면 그걸 빼는 문제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한 전 대사는 이어 미일동맹과 중러동맹 간의 세력균형론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과 더불어 일본과 ‘외교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대해 우려섞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러·중이 군사동맹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제한 뒤 “중·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 9월 일본 총리가 바뀌면 중일관계는 지금처럼 적대관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편승, 일본에 적대적 태도를 견지하다 ‘오리알’의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 핵폐기를 전제로 한 리비아식 해법이 북한에도 적용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 데 대해 한 전 대사는 “리비아식 해법은 북한문제에 도움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미국은 2003년 12월 리비아와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하면서 기대치를 높였기 때문에 (북핵과 관련) 그러한 해결책을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현실성있는 정책을 추구하기 어려워지고 더 강경하고 획기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이란·이라크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북으로 하여금 시간을 더 끌고 점점 더 자신들의 핵능력을 증가시키게끔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전 대사는 이어 지난해 2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을 때 ‘무시정책’으로 나갔던 한미 양국의 ‘속내’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당시 한국은 미국이 과잉 반응할 것을 우려, 애써 경시했고 미국도 자기의 대 북핵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데도 믿지 않는 척 하는 정책을 취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한 전 대사는 “우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개성공단 생산품을 국내 생산품으로 인정받는 정치적인 전리품(political trophy)”이라면서 “그것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동기가 된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개성공단 상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에 대한) 미국의 양해 없이는 한미 FTA가 체결되기 어렵다”면서 “미국이 남북간 협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한국민에게 주는 것은 미국 국익에 도움이 안되며 어떤 형식으로든 타결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측 인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대체로 미국이 개성공단 문제와 북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가하는 압력으로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면이없지는 않지만 그 보다는 조금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3~1994년 외무부 장관을, 현 부시 집권기에 주미대사를 각각 역임한 한 전 대사는 “클린턴 행정부 때는 대북정책에서 남한이 미국보다 강경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는 그 반대”라며 “후자 쪽이 한미동맹을 관리하는 데는 훨씬 어렵다”고 언급했다.

한편 1985∼1988년 주미대사를 지낸 김경원(金瓊元) 전 대사는 “한미관계가 지금 어려운 것은 양국이 역사적으로 가는 방향이 정 반대이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좌향좌’, 미국은 ‘우향우’ 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문제도 커지고 서로 불신하고 중요한 이슈를 두고 입장을 조화롭게 정리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필요하면 북한에 대해 제재한다는 조건부 대북정책인데 반해 한국은 대북관계에 있어 조건부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이처럼 전술적이고 기본적인 대북정책에 괴리가 있다는 게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미래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떼는 상황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면서 “20년후 중국이 미국과 대결하는 시대가 오고 한국이 중국쪽으로 간다는 가정을 하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나가는 방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사는 그러나 “한미관계가 위태롭긴 하지만 한번은 겪어야할 시련”이라며 “지난 30년간 한국사회는 농촌사회에서 유수의 산업사회로 변했고 미국은 9.11사태를 통해 남에게 도움을 주는 나라에서 국익 우선의 나라로 변한 만큼 보다 성숙하고 합리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한미관계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1988년 주미대사를 지낸 박동진(朴東鎭) 한국외교협회 고문과 1991~1993년 주미대사를 지낸 현홍주(玄鴻柱) 변호사도 참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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