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속개한 회담에 앞서 한민구 남측 수석대표와 김영철 북측 단장은 전날의 팽팽했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날씨와 농사 얘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다 갑자기 ‘순혈논쟁’에 빠져 회담장 온도를 뚝 떨어뜨렸다.
언쟁은 김 단장이 “남쪽 기후가 더 따뜻하니 농민들이 지금 부지런히 일하고 있겠다”고 하자 한 수석대표가 “농촌인구가 줄어 농촌총각들이 몽골.베트남.필리핀 처녀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답하면서 시작됐다.
이 말을 들은 김 단장은 이내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우리나라는 하나의 혈통을 중시해왔는데 민족의 단일성이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쏘아붙였다.
한 수석대표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한강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이다. 주류가 있기 때문에 다같이 어울려 살면 큰 문제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김 단장은 “우리는 예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잉크 한 방울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고 ‘순혈주의’를 계속 강조했다.
이에 한 수석대표가 “역사를 보면 우리는 동이족이었는데 주변의 말갈.여진.만주족 등과 함께 있으면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다”고 ‘순혈논쟁’을 수습하려 했지만 김 단장은 끝까지 지지않고 “그 얘기도 맞지만 고조선에서부터 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단일 민족으로 이어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때아닌 ‘순혈논쟁’은 김 단장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회담에 들어가자”고 말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본회담이 열릴 회담장은 냉랭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