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경의선과 동해선 시험운행에 전격 합의한 가운데 14일 파주 임진강역을 출발한 경의선 열차가 자유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제 12차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을 통해 합의된 이번 시범운행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6월 12일 전면중단됐던 경의선 철도 운행이 55년만에 재개되는 것이다./연합

통일부 “오래 전부터 강력한 의지갖고 추진”…정치적 해석 경계

남북이 경의선·동해선 철도 시험운행날짜에 합의한 것은 3대 남북경협의 하나로 2000년부터 추진된 철도도로 연결사업이 사실상 최종 단계에 접어들어 남북 철도물류 시대의 개막에 한발짝 다가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경의선의 경우 시험운행이기는 하지만 1951년 6월 12일 전쟁 통에 운행이 전면 중단된 지 55년 만에 휴전선을 넘어 철마가 달리게 되면서 앞으로 북방경제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는 물류 인프라 구축의 단초를 확보했다.

아울러 25일 시험운행을 하면서 6월 방북을 앞둔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6.15 공동선언 직후인 2000년 7월 첫 사업으로 시작한 경의선 철도연결사업의 대미를 직접 장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열차운행용 통신망 구성은 물론 빠른 시일 안에 차량운행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철도운영공동위원회와 도로운영공동위원회 명단을 교환하기로 의견을 모음으로써 열차 및 차량 운행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번 합의의 이행을 위해서는 양측 군 당국 사이의 군사적 보장조치가 필요한 만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정부 안팎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앞서 월 단위까지 시험운행 시기에 합의해 놓고도 군사적 보장조치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이행되지 못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의 배경에는 그동안 열차 시험운행과 철도도로 개통을 위한 우리 정부의 끈질긴 노력이 자리잡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DJ의 방북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많은 양보’ 발언과 연관시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핵심 경협의 의미 있는 진전을 놓고 또다른 정치적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어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철도도로 사업은 DJ 방북과는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 왔던 사업으로 그동안 조금씩 진척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갑자기 합의한 것이 아니라 합의를 위한 작은 전진을 거듭해 왔다는 설명이다.

실제 철도도로 개통 및 열차시험운행 문제는 남북 회담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해 수차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행에는 실패한 ‘장기 미제’인 것은 분명하다.

2004년 3월 제8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에서 양측은 “올해 안에 경의선 개성-문산, 동해선 온정리-저진 사이의 가능한 구간에서 철도 시험운행을 진행한다”고 합의한 데 이어 2004년 6월 9차와 2005년 7월 10차 경협위 때도 시험운행에 합의했다.

9차 때는 2004년 10월을, 10차 당시에는 2005년 10월을 각각 시험운행 시기로 잡았지만 매번 성사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월말 제11차 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에 이어 3월초 제3차 장성급회담, 4월말 제18차 장관급회담, 지난 3∼4일 경협위 제3차 위원급 실무접촉 등을 거치면서 간극을 좁혀왔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특히 우리측은 철도 기술협의 과정에서도 시험운행을 촉구, 4월부터 북측의 변화 조짐을 포착한 데 이어 5월 들어 경협위 3차 실무접촉에 이어 지난 9일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의 개성 방문 때 시험운행에 긍정적인 답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정부가 대북 경공업 원자재 제공이나 동해선 도로 출입사무소(CIQ) 건설 등 북측 요구사항의 수용 여부를 놓고 철도 시험운행 및 개통을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 주효했다는 관측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철도도로의 원활한 운영에 필수적인 ‘철도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합의서’ 체결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인 만큼 북행 및 남행 열차가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이 때문에 16∼18일 열리는 제4차 남북장성급회담을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우리측이 이번 장성급회담의 의제 가운데 하나로 철도도로 군사적 보장합의서 체결을 다룰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 간에는 차량운행합의서가 2003년 1월에, 열차운행합의서가 2004년 4월에 각각 합의돼 국회 동의절차를 마치고 지난 해 8월 발효됐지만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야 하는 남북물류의 특성상 군사적 보장합의서 없이는 운행이 어렵다.

심지어 경의선.동해선 도로도 지금은 잠정합의서를 근거로 통행이 이뤄지고 있지만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원과 차량을 감안할 때 잠정합의서를 정식 합의서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장성급회담이나 군사 실무(대령급)접촉, 아니면 문서협의 등의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군사적 보장조치에 합의하더라도 북측은 단지 시험운행을 위한 1회성 보장에만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향후 저익 개통식 날짜를 잡기 위해서는 정식 군사적 보장합의서를 새로 체결해야 하는 만큼 지난한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DJ의 6월 방북 때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북측은 시험운행과는 별개의 군사적 보장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관측은 가까이는 시험운행을 시작으로, DJ의 열차방북, 개통식 등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도 적지 않은 진통을 예견케 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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