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금강산 삼일포로 들어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자전거와 트랙터를 타고 이동 중인 북한 주민들이 보인다./金剛山=사진공동취재단

4월27일 오전 7시10분 황해남도 연안군의 정촌 흑연광산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한 남측 기업인과 언론인 등 150여명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 행렬이 숙소인 평양 양각도호텔을 출발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던 평양 시내를 버스가 벗어나 평양-개성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인적이나 차량 통행이 뚝 끊겼다.

오가는 차량을 거의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한 고속도로를 1시간반 가량 달린 버스는 평산(황해북도)이라는 곳에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도로는 비포장 상태로 바뀌었고 고속도로에서는 멀찌감치만 보이던 북한의 농촌을 버스로 지나칠 수 있게 됐다.
왕복 2차선 정도의 폭으로 보이는 비포장도로는 울퉁불퉁함이 별로 없어 차가 달리는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닦여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크고 작은 마을들이 정촌의 흑연광산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버스는 마을들을 통과하며 2시간 반가량 비포장길을 달렸다.

공장지대는 광산에 도착할 때까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북측이 남측 기자들을 대거 태운 차량이 농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시골길’을 장시간 통행할 수 있게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북의 농촌은 아직 모내기가 시작되지 않은듯 했다.

못자리가 간혹 눈에 띄었을 뿐 모가 심어진 논은 찾기 어려웠다.

한 마을 입구에 적혀있는 ’모두 다 씨 뿌리기 전투에로’라는 구호가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논과 밭 곳곳에서는 올해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땅을 갈거나 못자리를 돌보거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버스가 마을을 통과할 때면 집이나 건물을 짓기 위해 공동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골 구석이라고 생각되는 마을의 거리와 건물에도 각종 구호는 넘쳐났다.

승용차와 버스의 행렬이 마을을 통과할 때면 마을 사람들은 ’이게 뭔가’ 하는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고 일부는 손을 흔들기도 했다.

농촌을 지나면서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산에 나무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뗄감 부족으로 나무를 많이 베어내 북에 민둥산이 많다는 얘기는 서울에서도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또한 마을에 인접한 산은 비탈이 심한 부분까지 밭으로 개간된 곳이 많았다. 경작 면적을 넓히기 위해 그런 곳까지 밭으로 만든 것으로 보였다.

북측 농촌 주민들이 차창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볼 수 있었지만 대화와 같은 접촉은 할 수 없었다.

4시간 가량 걸린 평양에서 정촌까지 차량 행렬은 2차례 정차했고 그것도 인적이 없는 길에서만 가능했다.

당초에는 한 차례도 멈추지 않고 정촌까지 가는 것으로 돼있었다고 했다.

용변이 급해 차를 잠시 세울 것을 요구하는 남측 사람들에게 차량에 동승한 북의 안내원들은 정차하는 것은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다며 처음에는 거절하기도 했다.

농촌의 모습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도 금지됐다.

이 때문에 그 모습을 머리 속에만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북이 농촌 모습도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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