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탈북자 김춘희(가명)씨에 대한 한국과 미국, 유엔의 석방 요청을 받고 석방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실제론 그때 이미 김씨를 강제북송한 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19일(현지시간) "미국, 한국, 유엔관리들이 모두 나서 김씨를 북송하지 않도록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자, 중국측은 김씨 문제를 재검토중이며,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방중(3월19-23일)에 즈음해 김씨를 석방할 것이라고 유엔측에 전했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에서 강제북송된 김춘희씨를 비롯한 중국내 탈북자 문제를 제기키로 한 전후 사정을 설명한 기사에서 "그러나 미국 외교관에 따르면, 중국은 김씨 석방을 약속할 때 사실은 이미 김씨를 강제북송한 뒤였다"며 "중국은 구테레스 판무관이 중국을 떠난 이튿날 주중 미대사관에 북송 사실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이 미국 외교관은 "중국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속인(mislead)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김춘희라는 한 탈북여성 문제가 "세계 최강국 지도자간 정상회담"에서 제기되게 된 과정엔 또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인 특별한 관심" 외에,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의원이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인권특사에게 김씨 구명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고, 백악관에 영향력이 큰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북한인권운동 차원에서 김씨 구명에 적극 나선 것이 작용했다.

지난해 12월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대회에 참석했던 레프코위츠 특사와 인사를 나눴던 김 의원은 12월16일 레프코위츠 특사에게 편지를 보내 "탈북여성 석방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줄 수 있느냐"고 협력을 요청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에서 활동하다 최근 워싱턴에서 북한인권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보러 파이크스 미 중부목회자연합 사무총장을 비롯해 복음주의 교계 단체들은 김춘희씨 사건을 북한인권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삼아, 백악관과 국무부 압박에 나섰다.

그 결과 주중 미대사관이 김씨 북송 사실을 통보받은 엿새후인 3월30일, 부시 대통령의 칸쿤 방문을 수행중이던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김씨사건 관련 특별 성명을 내고 "김씨에 대한 중국의 처리방식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중국측을 비난하고, 북송 후 상황이 알려지지 않은 김씨의 "'안녕(well-being)'에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북한 당국을 겨냥하기도 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부시 대통령과 후 주석간 정상회담 준비를 하면서 중국 통화정책과 대중무역 적자 등 주요 양자 현안들에 대한 설명자료를 모으느라 분주했지만, "소수 관계자들은 중국의 탈북자 처우 문제를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개인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백악관과 국무부 모두 북한인권법에 따른 자금지원, 탈북자 망명 수용 등 실제 행동은 취하지 않은 채 말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며, 국무부는 인권문제보다는 핵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신문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은 또 미.중정상회담에 대한 백악관의 17일 사전 브리핑에서도 탈북자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같은 날 백악관측이 워싱턴 포린 프레스 센터에서 외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선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부시 대통령이 후 주석에게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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