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싫어하는 집단과의 소통이 더 중요”
김진명 “작가는 현상 뒤에 숨은 진실 봐야해”
매스컴으로 접하는 북한과 실제 北사람들 차이 있어


◇ 무라카미 류(왼쪽)과 김진명


- 무라카미 류, 김진명

‘김일성의 암살과 북한 특수부대의 일본 습격.’

김진명(49)과 무라카미 류(54)가 그린 소설 속 북한은 핵으로 외줄을 타는 현실만큼 위태롭다. “김일성 사망의 배후에 중국의 동북공정이 있다”는 김진명의 장편 ‘신의 죽음’. “북한의 특수부대가 일본 후쿠오카를 침략한다”는 무라카미 류의 장편 ‘반도에서 나가라’. 현장 냄새 물씬 풍기는 가상 시나리오를 쓴 두 작가가 13일 오후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김씨는 “서울 교보문고 신간소설 베스트 코너에 당신과 내 작품이 나란히 올라 있다”고 했고, 무라카미씨는 “정말이냐, 한국 독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진명〓우리의 소설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사가 진행되는 현장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일본 작가가 북한을 다룬 것이 흥미롭다.

▲무라카미 류〓‘반도에서 나가라’를 쓸 당시 북한에 납치돼 사망한 요코다 메구미가 일·북 관계의 경색을 불러왔다. 당시 매스컴은 북한을 피상적이고 흥미위주로 접근했지만 나는 매스컴으로 보는 북한과 실제 북한 사람들 사이에 갭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차이를 파헤치면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김〓작가는 현상 뒤에 숨은 진실을 봐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화해무드와 더불어 남한에 친중국 분위기가 뚜렷해졌다. 반면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해 나는 김일성의 죽음을 중국의 동북공정과 엮었다.

▲무라카미〓북한인이 쓴 ‘탈북자’란 작품을 읽고, 그들에게도 자유를 갈망하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소설의 북한 특수부대원은 일본땅을 낯설어 한다.

그들을 보는 일본인들도 이질감을 느낀다. 소설에는 온몸이 흉기인 북한의 여성 특수부대원이 일본 여자에게 기습적으로 입맞춤을 당한 뒤 흔들리는 장면이 나온다. 차갑다는 인상이나 이질감은 겉모습일 뿐이다. 내면으로 눈을 돌리면 인간의 동질성이 읽힌다.

▲김〓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작가의 책무다. 당신의 소설에서 주류에 대한 조롱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가 읽힌다.

▲무라카미〓나는 일본에서 주류에 속하지만, 동양인으로서 세계무대에서는 소수의 입장이 된다. 북한 특수부대원은 북한에서는 주류 엘리트였지만 일본에서는 소수이다. 그들이 침략한 규슈 지방 사람들은 특수부대원들에 비해 다수이지만 일본 국내에선 주류가 아니다. 이처럼 다수와 소수의 입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김〓동아시아 역사의 왜곡 문제도 그런 시각으로 짚어보자. 임나일본부설을 예로 들자면 “그 땅은 옛 일본 땅이니 되찾자”는 극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중국 또한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려 한다. 당신이 말한 소통이 3국간의 불편한 과거사 논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무라카미〓소통에는 함정이 있다.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과 소통을 끊고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집단과 소통하는 것이 실은 더 중요하다.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 사이의 대화다.

▲김〓지난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한 직후에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둔 일본 축구협회 고위인사가 한국에 왔다. 그는 “일본아, 같이 가자”는 한국응원단의 플래카드가 축구장에 걸린 것을 보고 감격했다고 한다. 독도 문제가 껄끄럽지만 그 플래카드에 담긴 정신을 살려 한·일 양국이 좋은 이웃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무라카미〓전적으로 동감한다./도쿄=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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