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일본 도쿄에서는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란 것이 열렸다. 정부와 민간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국가안보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참석자들은 주로 국장·심의관급 외교관이나 국책연구기관 교수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모였다.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측이나 북한측이나 5개월여 중단돼온 6자회담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기대를 했었다.


◆ 힐, 북 대표와 인사도 안 나눠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겸하고 있는 힐 차관보는 이번 회의에 나란히 참석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지 않았다. 그의 카운터파트인 김 부상은 대화 참석 이전부터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며 회동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힐 차관보는 모른 척했다.

같은 회의장에서 김 부상의 얼굴을 뻔히 보면서도 수(手)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정부와 중국, 일본 관계자들이 막후에서 미·북 수석대표를 만나게 하려고 분주히 움직였으나, 힐 차관보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쿄에 도착할 때부터 “김 부상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한 것을 그대로 실천으로 옮긴 채 12일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오히려 힐 차관보는 언론을 통해 북한을 훈계했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여 있는 북한관련 자금은 240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은 그렇게 작은 문제와 비핵화·경제 개방 등 중요한 문제를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 위폐 압박 거두지 않을 듯

힐 대표가 도쿄에 있을 때 부시 행정부는 추가 대북제재 조치를 내놓았다. 미국 시민과 기업 또는 미국에 지점이 있는 외국기업에 대해 북한 선박의 보유, 이용 및 선박보험 제공 등을 다음달부터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조치가 북한에 미칠 경제적 영향은 100만달러에도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굳이 실효성 없는 조치를 발동한 것은 다른 나라들에 “북한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처럼 미국이 완강해진 것은 북한이 유통시킨 위조달러를 포함, 검은 돈이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BDA 제재가 예상 밖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당황한 북한을 보고 미국은 좀더 몰아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외교전문가도 “미국이 BDA 사건으로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 미, 북한과 협상 안 하나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미국이 정말 북한식 표현대로 ‘대북 압살정책’에 들어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며 “현재로선 협상력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여우와 고슴도치’ 관계에 비유, “여우(미국)는 갖은 방법으로 고슴도치를 처치하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고슴도치(북한)는 몸을 움츠리고 가시를 돋게 해서 위기를 넘긴다”며 효과를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위폐 문제를 다루는 미 재무부의 입장은 협상을 중시하는 국무부와 달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예상이 맞는다면 북한이 백기를 들지 않는 한 협상 재개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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