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일/ 언론인

TV 뉴스에서 라디오의 무슨 대담 프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양극화’ 떠벌리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마치 지금의 한국사회가 볼셰비키 혁명 직전의 러시아처럼 느껴진다.

한 줌도 안 되는 황실, 귀족, 부농, 자본가들이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고혈을 쥐어짜 맹꽁이 같은 뱃살을 키우고 있는 사회…. 그 제정(帝政) 러시아가 바로 오늘의 한국적 양극화의 무대인 양 암시하고 있다.

이 도식적 양극화 논리를 가지고 구(舊)좌파 권력진영은 참으로 투박하기 짝이 없는 관념적 대치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좋은 학교, 강남지역, 재벌, 기득권, 보수주의, 자유주의, 친미(親美)파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반(反)민중’ 세력 대(對) 가난한 ‘민중’ 세력의 대치구도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2007년에 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대중적 질시현상을 한껏 조장하는 것이 유일한 전략이라고 본 모양이다.

하기야 재벌 비자금, 강남 집값, 8학군, 학벌사회, 영어 너무 잘하는 사람, 교양 높은 선남선녀를 보고 질시하는 심정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서에 불을 댕기려는 구좌파의 이분법적 대치구도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구좌파 엘리트 자신들은 왜 일류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하고 또 일부는 외국유학까지 갔었다는 것인가? ‘반미’ ‘민중’을 외치면서 제 자식은 해외 영어연수도 시키고 미국유학까지 보내는 것은 또 무엇인가?

툭하면 강남에 사는 것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하는데, 자칭 ‘진보적’입네 하는 오늘의 권력 엘리트 중에는 강남에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을 동네북으로 삼지만, 그것 역시 ‘변칙상속’ ‘비자금’ 같은 구석만 안고 있는 게 아니라, 심지어는 친(親)김정일 세력까지 먹여 살리는 역설(逆說)의 측면 또한 분명히 안고 있다. 세상사란 그래서 ‘386’ 그들이 그렇게 일도양단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걸핏하면 또 기득권 세력을 시비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누가 진짜 옹골찬 기득권 세력이었는지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다. 국가권력기관, 공기업, 위원회, 법정(法定)단체, 정부출연기관, 관선이사, 금융기관, 공공기금(基金)들의 요직까지 모조리 ‘코드’와 ‘낙하산’으로 독식해버린 자들이 이제 와서 누구더러 ‘기득권’ 운운한다는 것인가?

쓸데 없는 기구들 마구 만들어 막대한 세금으로 ‘운동꾼’들에게 감투 씌워 주고, 월급 주고, 해외출장 보내고, 활동비 주고, 연구비 주는 것 역시 오늘의 기득권 세력이야말로 바로 세금 불가사리 ‘오렌지 좌파’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우파운동도 좌파 득세 판에선 개밥의 도토리 신세다. 홍위병 패거리에는 이런 명목 저런 명목으로 뒷돈을 주는 어떤 재벌이 뉴라이트 활동가에게는 “우파에는 후원금을 낼 수 없다” “좋은 일 하는 줄은 알지만…” 어쩌고 하며 문전박대를 하더라는 것이다.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좌절할 뻔했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약점 잡힌 자들의 고충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애써 자유주의 우파운동을 하는 순수한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만년 기회주의 얌체족(族)을 위해 자유주의 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영국 노동당 해럴드 윌슨 내각의 ‘붉은 여왕’ 바버라 캐슬은 ‘수표책 싸들고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을 입에 거품을 뿜고 매도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자기 아들이 아팠을 때는 그를 가명으로 특급병원에 살짝 입원시켰다.

‘오렌지 좌파’도 끗발 잡으면 ‘오렌지 우파’ 뺨친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투기, 황제골프, 자녀 해외송출, 특급시설 이용도 로맨스”라는 이중 기준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양극화 굿거리는 그래서 오늘의 신관사또 ‘오렌지 좌파’가 자기들의 장밋빛 전성시대일랑 살짝 감추고서, 불우한 사람들의 불행을 최대한 부추기고 이용하려는 위선적 자가당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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