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위폐 제재’ 효과보자 변화 움직임
北 개혁·개방 의지 있으면 ‘평화체제’로
버티기로 나오면 ‘정권 변환’ 나설 듯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6개월을 넘긴 지금, 한반도 정세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핵포기 의지가 없는 가운데 미국의 금융제재가 의외의 효과를 보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최근 이를 ‘미묘한 정세 변화’라고 표현했지만, 변화의 폭과 무게는 ‘미묘함’ 수준을 뛰어넘는 것 같다.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최근 정세 변화를 3차례로 나눠 진단해 본다.

우리 정부는 이미 올 초에 부시 행정부의 정책 변화 움직임을 파악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6일 “미국이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북한을 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그 내용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종합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핵 문제 차원을 넘고 있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6자회담은, 북한을 상대로 한 직접적인 처벌조치를 병행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가 내린 결론”이라고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 문제해결의 새 패러다임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근본적 변화 추구하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22일 내외신 브리핑에서 ‘이 장관이 말한 미묘한 변화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한반도 평화체제 등에 대해 미국이 좀더 폭넓은 개념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평화체제는 지금의 남북 간 정전(停戰·전쟁을 중지한 상태)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좀더 폭넓은 개념’이란 단순히 남북관계가 아니라 북한의 변화까지를 포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그 길로 가는 방법이 채찍이냐, 당근이냐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채찍 쪽 움직임이 많다. 16일 발표된 미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폭정을 종식시켜야 할 국가로 7개국을 꼽았는데, 북한이 첫 번째였다. 보고서는 북한 위폐·마약 등에 대한 추가 조치도 언급했다.

지난 7일 미국에서 미·북 위폐 회담이 열렸을 때, 부시 행정부에서 이를 주도한 곳은 국무부가 아니라 재무부와 법무부였다. ‘협상’이나 ‘외교’와는 다른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을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북핵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런데 북한 위폐 문제를 제기한 것이 생각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북한은 “미국이 우리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결정타를 맞았음을 시인했다.

그러자 미국은 이제 위폐뿐 아니라 마약 등 불법거래 전반으로 북한을 압박할 태세다. 정부 당국자 중에서도 “부시 정부가 김정일 체제의 약한 부분을 건드려 본격적으로 체제 변환(regime transformation)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을 꺼내 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스테이크 & 해머

정부 관계자들은 부시 행정부의 새 패러다임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에서 지금까지의 북한 유인책보다 훨씬 ‘통 큰’ 방법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의 정책이 ‘당근(carrot)과 채찍(stick)’ 수준이었다면, 이보다 더 큰 ‘스테이크(Steak) & 해머 (Hammer)’ 정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상하되, 그렇지 않으면 채찍이 아니라 망치로 때려 부수는 수준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테이크’로는 미국 클린턴 정부가 내놓았던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와 비슷한 개념의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페리 프로세스는 한·미·일 3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WMD)를 제거하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핵을 해결하고 나머지 사안들을 논의하는 방안이 아니라 ‘미국식 일괄타결’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반대인 ‘망치’로는 무력이 아닌 방식의 북한 정권 변환이 추진될 수 있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새 패러다임은 유동적이며, 결국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새 패러다임을 확정해도 이라크 문제 때문에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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