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월북한 윤성식(69) 전 4월혁명회 감사가 50년대 이른바 `진보당 사건'을 회고하는 글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 맡고 있는 윤씨는 3일 입수된 민주조선 최근호(2.24)에 기고한 `피해자의 증언-진보당 사건은 이렇게 조작됐다"는 제목의 글에서 "진보당 사건은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꿈꾸면서 최대의 정치적 적수인 조봉암 선생을 제거하기 위해 꾸며낸 날조극"이라고 주장했다.

윤씨의 회고에 따르면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고학을 했던 그가 진보당에 입당한 것은 57년 10월 진보당 기관지 `중앙정치' 창간호에 조봉암이 기고한 `평화통일에의 길'이란 글을 읽고 나서였다.

그의 입당보증인은 조봉암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여운형과 조선건국동맹을 만들고 단선단정 반대운동을 벌였던 아버지 윤승원(윤윤기)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듬해 1월12일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핵심간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되는 이른바 `진보당 사건'이 터졌다. 그 역시 체포돼 여섯 달 동안 고초를 겪었지만 나중에 비밀당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윤씨는 조봉암에 대한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하면서 진보당 사건의 전모를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는 조봉암에게 북한의 공작금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양이섭(양명산)이 자신에게도 사형판결이 내리자 "북의 공작금을 받은 적도 없는 데 위협에 못이겨 거짓증언을 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고 증언했다.

윤씨는 조봉암의 외동딸을 데리고 면회를 가서 지켜봤던 그의 마지막 모습도 소개했다.

조봉암은 딸에게 "이승만에게 사면해달라고 청원을 해서 안된다"고 신신 당부했다. 또 윤씨에게는 "윤동지, 요즘 비가 오지 않으니 극심한 가물로 농민들이 애타겠는데 그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구먼. 허나 걱정일 뿐 나에겐 도와줄 길이 없구려"라며 안타까워했다는 것.

윤씨는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때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이처럼 태연하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걱정한 것이 죽산 조봉암 선생이었다"고 회고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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