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 마련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서 황경영(93)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북한에 두고 온 딸 순실(63)씨와 손자 광성(29)씨를 만났다./연합

"아버지! 고향을 생각해봤습니까? 명사십리가 있는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해 봤지. 정말 아름다운 바다였지. 그 곳에서는 모래를 밟으면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어"

27일 오후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 마련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서 황경영(93)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북한에 두고 온 딸 순실(63)씨와 손자 광성(29)씨를 만났다.

50여 년 만에 딸을 만난다는 생각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황 할아버지는 우황청심환을 마시고서야 상봉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상봉장에 들어서자 황 할아버지는 이젠 할머니가 돼 화면에 나타난 딸(헤어질 당시 9살)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딸도 이젠 90살이 넘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들 부녀 사이를 다시 이어준 끈은 다름 아닌 사그락거리는 모래로 유명한 고향 함경남도 홍원군의 명사십리 해변과 공습으로 숨진 황 할아버지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황 할아버지의 질문에 순실씨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공습으로 집이 폭격당해 불에 타 모두 숨졌다"고 대답하자 황 할아버지는 "내가 충격을 받을까봐 같은 고향에서 월남한 이웃이 모두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 소가 마당에서 불타 죽었다'고 말했어"라며 부모님의 운명을 확인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젠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듯 상봉 내내 딸과 손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황 할아버지가 오래 참고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고 울먹이자 아버지가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제사를 지내왔다던 순실씨도 "이젠 아버지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이라며 통일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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