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살아계셨군요.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27일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에 마련된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을 찾은 이근재(70.인천시 동구)씨와 누나 근옥(72)씨, 여동생 근순(60)씨는 꿈에도 그리던 북측의 맏형 근영(74)씨를 TV화면을 통해 만났다.

육남매의 맏이로 부모님을 도와 어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14살 때부터 남의 가게 점원으로 일했던 형이었다.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만난 형의 얼어 터진 손을 부여잡고 울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6.25때 형님이 일하시던 문방구가 폭격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달려가 보니 잿더미만 남아있어 꼭 돌아가신줄로만 알았습니다."

근재씨는 북측의 형이 적십자사를 통해 남측의 동생들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누군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50여년만에 남측의 동생들을 만난 근영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긴 세월동안 부모님과 너희들 생각 잊은 적이 없다. 부모님 묘소에 가면 네가 형 대신 좋은 술 한잔 부어드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말씀 드려다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형님 사진만 보면 눈물을 지으셨어요. 진작에 생사라도 알았다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으셨을텐데..."

외국에 사는 동생들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지만 반갑게 다시 만난 가족은 저마다 사진을 손에 들고 일일이 아들, 딸을 소개하면서 웃음 꽃을 피우기도 했다.

북측의 근영씨는 "열 여덟 어린 나이에 북에 단신으로 왔지만 좋은 사람을 아내로 얻고 슬하에 육남매나 두었다"면서 "손주들까지 합치면 스물다섯명의 대가족을 이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헤어질 때 젖먹이 어린아기여서 큰 오빠의 모습을 빛바랜 사진으로만 보아 왔다는 막내 근순씨는 "큰 오빠와 조카들이 꼭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인물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화면으로나마 짧은 만남을 가진 북측의 근영씨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다"고 작별인사를 하자 남측의 동생들은 "살아서 다시 꼭 만나자"고 당부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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