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 운동에 이어 ‘뉴 레프트’ 운동이 일어난 것은 2006년 새해를 장식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뉴 레프트’는 1960-1970년대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이 종래의 레닌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었다.

페리 앤더슨, 놈 촘스키, 허버트 마르쿠제 같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올드 레프트’의 1930년대적 교조(敎條)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담론을 제시하려고 애썼다.

2006년의 한국의 ‘뉴 레프트’는 물론 1960년대 서유럽의 ‘뉴 레프트’와도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관련 인사 스스로도 “뉴레프트보다는 ‘한국적 제3의 길’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으니까.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마치 영국의 토니 블레어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다같이 극복할 ‘제3의 길’을 찾겠다고 한 점에서….

‘올드 레프트’는 이미 전세계에서 쓰레기 종말처리장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그런데 그 임종기의 고물(古物)이 난데없이 1980년대 한국에서 벌떡 일어 났었다. 6·25 직후 남한 최초의 ‘진보’ 운동은 원래 그런 ‘올드 레프트’ 운동이 아니었다.

조봉암 씨의 진보당, 서상일 씨의 민주혁신당도 ‘올드 레프트’가 아니었다. 학생운동의 주류 역시 ‘급진적’이기는 했지만, ‘올드 레프트’는 아니었다.

그저 기껏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수정 자본주의, 중도적 민족주의, 사회복지와 사회정의 정도에 서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적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4.19 후 혁신계 일각에는 이런 중도적 ‘진보’를 씹고 다니는 ‘더 치우친’ 분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민주민족’ 운운 하던 성향이 그 하나였다.

1980년대에 들어 386 NL(민족해방) 계열은 드디어 ‘반(反)독재 민주화’ 운동의 지형을 자기네 영토로 석권하는 데 성공했다. 자유주의, 개량주의를 동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매도했다.

1980년대의 ‘민족해방’ 운운은 결국 말이 좋아 ‘민족 민주’이지, 실은 ‘감성적 민족주의’에 편승한 김정일 수령독재 옹위세력임이 드러났다. 말도 안 되는 시대착오요, 무어라 이해할 길 없는 시대역행이었다.

그래서 2006년의 ‘제3의 길’ 운동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올드 레프트’를, 그리고 나아가선 이미 한계를 드러낸 사회민주주의 까지도 함께 극복하겠다고 나선 것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친(親)김정일 ‘올드 레프트’의 서슬과 행패를 무릅쓰고 ‘뉴 레프트’를 짊어지고 나온 것은 아마도 ‘뉴 라이트’ 못지않은 힘겨운 기획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뉴 레프트’ 또는 ‘제3의 길’ 운동에 대해 처음부터 너무 많은 주문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두 가지만은 꼭 기대하고 싶다. “태어난 게 너무 재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나라도 아닌 나라 /대~한민국 /아 x발 /대~한민국”이라고 저주하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님을 천명해 주었으면 한다. “세계는 선군(先軍) 자주(自主)의 위력에 경이(驚異)를 표하고 있다.

‘우리민족 끼리’ 기치 높이 들고 ‘3대 민족공조’ 실현하여 연방통일 실현해 나가자(북한의 대남 선동이 아님)”고 외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임을 당당하게 지적하는 ‘뉴 레프트’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진보’를 ‘진보’이게끔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건-바로 ‘반(反) 지성’ 아닌 ‘지성적 레프트’를 만드는 일을 ‘뉴 레프트’가 해주었으면 한다. 작금의 ‘올드 레프트’는 지적(知的) 집단 아닌, 난폭한 ‘반달리즘(vandalism·문화파괴)’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좌’가 21세기 선진화 속의 ‘지속 가능한’ 참여자가 되려면, 우선 일부의 그런 황폐화 풍조부터 치유해야 할 것이다. ‘뉴 라이트’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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