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모스크바의 많은 지인(지인)은 나에게 “정말로 한반도의 냉전은 종식된 것이며, 통일이 준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 러시아인들조차도 무한정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갈등에 지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 화해를 강하게 염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 당사자인 한국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것이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악수하고 대화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이다.

‘정상회담’은 무엇보다도 ‘심리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평양 정권은 더 이상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으며, 남쪽에는 단지 미국의 ‘괴뢰정권’만이 있을 뿐이라는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됐다. 남한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북한 선전은 더욱 어렵게 됐다. 이에 북한 주민의 가슴 속에는 남쪽에 대한 증오 대신에 희망과 믿음의 싹이 트기 시작할 것이다.

남한의 심리적 환경도 변하고 있다. 남한 엘리트들은 이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부정하기 힘들게 됐다. 북한 문제에 대한 한국 매스컴의 태도도 수정될 것이다. 북한과의 화해에 대한 희망이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평양과의 대화를 가속시키라는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강화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외부 ‘당사자’의 행태도 변화할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도 더 이상 북한체제를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 없을 것이며, 북한과의 접촉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점차적으로 한반도를 ‘화약고’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경제적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지금까지 평양은 대한민국과의 경제협력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이 부분에 상당한 수정을 가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서울과의 대화로부터 최대한의 경제적 이익 배당금을 끌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북한 국가 기구와 경제조직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배가시킬 것이며, 북한 정권은 남한 기업들의 북한 시장에서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적 환경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군사·전략적’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평양은 이제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더 적게 느낄 것이다. 이것은 북한 지도부가 ‘핵미사일 방패’를 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덜 절감하게 됨을 의미한다. 서울도 군비축소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양측은 군비축소 문제를 다루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발전된다면, 미국의 ‘매파’들은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을 위한 명분을 상실하게 된다. 동북 아시아 집단 안보보장 메커니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사실상 현실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이같이 잘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니 남·북한 관계 개선 과정에는 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북한을 외부세계, 특히 한국에 개방하는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위험을 느끼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주민들의 이데올로기를 약화시키고, 지도부의 무오류성과 공산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방정책은 외부세력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데, 이것이 강한 민족주의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 지도부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평양이 정말로 서울과 형제처럼 지내기로 결정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평양은 서울과의 대화 규모를 제한시키고, 더 신중하게 대화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에는 아직도 ‘북한 위협’ 카드를 계속 활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반도는 냉전의 불길이 가시지 않은 마지막 지역이다. 한반도는 미국 군산복합체가 군비강화를 위한 명분으로 활용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미국 군산복합체에는 북한이란 적이 필요하며, 이를 상실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러시아는 진정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남·북한 화해와 통일, 그리고 ‘강력한 통일 한국’의 탄생을 염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향에서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러시아 외교 아카데미 부원장

◈ 예브게니 바자노프

▲국제관계대학 국제경제 학과 졸업

▲소련 외무부 근무,

미·중·싱가포르 근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 아·태지역 담당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국가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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