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좋은정책포럼' 창립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지속 가능한 진보를 위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좋은정책포럼 제공

뉴 라이트와 공통점- 민주주의·시장경제 인정 이념 갈등 해소를 지향
차이점- 국가주의·시장만능 극복 北인권 관심… 압박 반대


‘유연한 진보(進步) 세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7일 창립한 ‘좋은정책포럼’은 기존의 한국 좌파(左派)가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진보의 틀 안에서 대안(代案)을 추구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출범한 ‘뉴 라이트’와는 반대편에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뉴 레프트’라 할 만하다. 양쪽 모두 옛 근본주의적 노선에 대한 반성 위에서 이념적 헤게모니를 지향하고 각 세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점에서 마치 좌·우가 바뀐 채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앞으로 ‘서로 말이 통하는’ 열린 토론의 장을 만들면서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속 가능한 진보가 되겠다”

‘좋은정책포럼’의 캐치프레이즈는 ‘지속 가능한 진보’다.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의 ‘진보’를 가지고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공동 대표인 임혁백(任爀伯)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진보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사회경제적 발전 모델은 물론, 패러다임의 큰 변환에 대응하는 이념적·정책적 콘텐츠를 내놓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의도는 바로 이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와 연대, 생태의 기본 가치에 바탕을 둔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발전·평화와 공정한 시장 경제를 지향한다는 것이며, 국민의 행복 수준을 높여 줄 수 있는 ‘실사구시적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눔(sharing)’과 공생·통합을 지향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진보’는 누구인가

‘좋은정책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은 임혁백 교수와 김형기(金炯基) 경북대 교수는 모두 현 정부 정책기획위원회의 전·현직 위원들. 임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자로 같은 고려대의 최장집·이호재 교수 등과 함께 이른바 ‘시카고 학파’ 인맥으로 분류된다.

‘시장·국가·민주주의’ 등의 저서를 냈으며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성장정책과 분배정책을 연계해서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경제학 전공인 김형기 교수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한국경제의 양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권과 혁신을 통한 새로운 대안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정해구(丁海龜) 성공회대 교수는 남북한 정권 수립과 미군정기 노동운동 등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 북한의 인권문제는 인권 그 자체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주역인 김균(金均) 고려대 교수는 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자문위원을 지낸 경제학자이며, 지역개발학 전공인 조명래(趙明來) 단국대 교수는 오랫동안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몸담아 왔다.

◆뉴 레프트 vs 뉴 라이트

양측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의 전제조건”이라며 “효율성을 높이는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겠다”는 ‘좋은정책포럼’의 창립선언문은 ‘뉴 라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10월 창립한 ‘뉴라이트 네트워크’의 경우 “시장은 커야 하고 정부는 작아야 한다”며 “국민의 선택을 제한하고 시장의 자율을 억제하는 ‘큰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길로 나간다”는 것이다.

반면 ‘좋은정책포럼’은 “국가냐 시장이냐 하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넘어 국가·시장·시민사회 3부문의 역할 분담을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좋은정책포럼’은 또 ‘뉴 라이트’측이 중시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남한의 진보세력이 외면해선 안 될 문제”라면서도 이 문제가 북한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사용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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