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회 산업부 차장대우


참 멀리도 갔다. 신의주~단둥(丹東) 간 압록강 철교를 건넌 이후 어림잡아 3200 ㎞. 김정일 위원장의 목적지는 결국 광둥성 광저우(廣州)였다. 아무리 중국의 철길 인프라가 북한보다 좋고, 또 호화 열차라도 어디까지나 기차는 기차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왜 광둥성, 왜 광저우일까?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11기3중 전회’를 통해 ‘국가 목표를 정치에서 경제로 옮길 것’을 만방에 선포한 ‘개혁·개방’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뭔가 부족하고 조금 허전하다. ‘상하이(上海)’에서도 이 정도 겉모습은 얼마든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3200㎞를 달려간 광저우에서 ‘눈’이 아닌 ‘가슴과 머리’로 받아들인 게 무엇이냐는 점이다.

뭘까? 그가 묵은 광저우 ‘바이톈어’(白天鵝)호텔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외국인들은 그곳을 ‘화이트 스완’(White Swan)으로 부른다. 세계호텔협회 선정 중국 최초의 일류 호텔(1985년), 중국 최초의 5성급 호텔(1990년)로 유명하다. 남부 중국의 젖줄 주장(珠江)강을 굽어보는 이곳의 밤 경치는 정말 황홀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한국말이 유창한 김일성대학 출신 장더장(張德江) 광둥성 서기로부터 180도 다른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개혁·개방 다음해인 1979년 외자를 유치한 최초의 중외(中外)합작 호텔입니다. 외자 덕을 톡톡히 봤지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동지가 세 차례나 이곳을 방문한 뜻을 아시겠습니까?” 홍콩 부동산·카지노 재벌 ‘헨리폭’이 50%만 출자해 놓고, 100% 경영권을 장악했을 정도로 외국자본 우대의 첫 성공물이다.

가슴으로 느낄 부분은 숱하다. 광저우는 미국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의 중국판(版)이다. 일본 혼다(本田)자동차가 진출, 대성공을 거뒀다. 다임러크라이슬러도 합작 자동차회사를 세울 예정이다. 후베이(湖北)성 둥펑(東風)자동차도 혼다와 50대50 비율로 자동차엔진 합작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또 있다. 광저우는 세계 최대 비즈니스 컨벤션 도시인 독일 하노버를 중국에 옮길 태세다. 2년 전 개장한 광저우 컨벤션센터는 아시아 최대이며, 하노버에 이은 세계 2위 규모다. 작년 11월 이곳에 들른 한국인 기업인은 “외형에 놀랐고, 외국 기업들이 돈 들고 몰려 오는 것에 두 번 놀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초대형 ‘실리콘밸리’는 또 어떤가. 광저우는 미 실리콘밸리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국내외 과학·기술자 6만여 명을 수용하는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단지 건설작업에 착수했다. 2003년부터 5년 기한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광저우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이념이 강하고, 정치적으로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유행인 곳이다. 아시아 최대 재벌 홍콩 리자청(李嘉誠)의 고향이 광둥성 차오저우(潮州). 시 산하 1180개 리(里) 단위 당 간부를 주민들이 직접 뽑는 곳은 중국에서 광저우가 유일하다.

김 위원장은 이미 상하이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세를 봤다. 광저우, 광둥성에서는 ‘자본주의의 향기’ ‘홍콩 등 선진자본주의를 관문으로 활용하는 해외합작식 개혁·개방’의 가치를 느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광둥성은 이것을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곳이니까. 김 위원장식 남순강화(南巡講話), 그리고 평양 복귀 이후 그의 움직임이 새삼 궁금해진다./이광회 산업부 차장대우 전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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