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영화·드라마서 ’북한은 전쟁 대상’ 이미지 고착 우려

최근 북한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미국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최악의 악역으로 등장하거나 미국과 북한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으로 자주 그려지고 있다.

특히 미 abc TV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화요 주간극 ’최고사령관’은 10일(현지시간) 방영분에서 북한 영해 인근에서 비밀활동을 하던 미국의 핵잠수함이 사고로 해저에 가라앉은 상황에서부터 북한과 전쟁위기로 치닫는 시나리오를 전개했다.

미국은 사고 핵잠수함 시애틀호의 승무원을 비밀리에 구조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을 얻기로 하고 대통령이 주미 중국대사를 불러 미국의 대중 인권문제 제기 완화, 첨단무기 체제에 전용될 수 있는 민감품목인 통신장비 등의 판매 등 중국측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협력 약속을 얻는다.

그러나 미국이 비밀에 붙인 시애틀호의 좌초를 북한이 알아채고 “전쟁 행위”라고 비난한 것을 미 언론이 보도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위기 국면으로 반전, 동북아 주둔 미군에 ’데프콘 3(준비태세 강화)’가 긴급발령되는 것으로 이날 분 드라마는 끝났다.

냉전시대 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세계평화 위협세력으로서 미국과 전쟁을 벌이거나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것으로 단골 등장한 소련의 자리를 북한이 대신하는 양상으로서, 영화적 허구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에 대한 이미지 영향이 큰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북한이 자주 이같이 그려지면서 미국민 사이에 북한이 전쟁이 불가피하거나 마땅히 전쟁을 벌여야 하는 대상이라는 심상이 맺힐 우려가 제기된다.

소련은 냉전시대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데 비해, 1990년대 이후 미국이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을 통해 무쌍의 군사력을 자신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일반 미국민의 심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와 관련, 지난 6일 미국 공공 케이블방송인 ’시 스팬(C-SPAN)’이 중계한 한 토론회에서 “우리는 차세대로서 아마 미래의 전쟁을 치를 세대일 겁니다. 이라크전 이전에 우리들끼리 얘기할 때는 우리가 이란이나 북한과 싸우러 갈 지도 모른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들 나라가 이라크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북한과 싸우러 가게 될까요?”라는 한 고교생의 질문이 시선을 끈다.

미국의 녹취 전문회사인 FNS에 따르면, 제임스 모란(민주.버지니아), 존 무타(민주.펜실베이니아) 하원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토론회에서 고교 1년 벤저민 셔퍼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학생은 처음엔 “사우디 아라비아와 북한”이라고 말했다가 “아니 이란과 북한”이라고 정정했다.

이에 대해 모란 의원은 “그건(이란, 북한과 전쟁은) 무모한 짓일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과 전쟁할 수 없고, 전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이란과 전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쟁) 자원이 없고 (전쟁을 벌인 후) 발을 빼는 길도 모른다”는 것.

그는 “이란은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야 할 것”이라며 “(이란의) 개혁파가 지금은 군부와 이슬람 신학자들의 통제를 받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들 개혁파와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국제기구들과 협력, 극단주의자들, 특히 이란의 종교적 극단주의자들과 북한 지도부를 최대한 극소화(marginalize)하고, 이들 기구를 통해 대안, 건설적인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고 “두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와든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9.11 테러공격 이후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을 치르고 있는 ’전시 미국’ 젊은이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징병제 부활 여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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