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경우가 많다. 올 한 해, 노무현 대통령도 여러차례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고, 완전히 다른 길로 갈 뻔한 적도 있었다.

◆ 결정적 갈림길

① 대북 독트린 나올 뻔 =지난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의 ‘핵보유 선언’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격분했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북 정권에 호의적으로 접근했는데 이렇게 판을 깰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 북한에 화났다’는 제목으로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노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대 북한 성명’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참모진에 가감없이 드러냈다고 한다.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국민들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갖게 했으니 대국민 사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를 대국민 성명 형태로 공표하는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참모진의 만류로 일단 연기했다. 이때 노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면 남북관계 및 6자 회담은 지금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② 부시의 한 마디 =한·미 동맹을 둘러싼 이상기류는 6월 1박3일짜리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장에서 자신의 왼편과 오른편에 배석한 라이스 국무장관 및 럼즈펠드 국무장관에 대해 “라이스 장관은 나보다 합리적이고 나는 럼즈펠드보다 합리적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합리적인 순서가 라이스>부시>럼즈펠드라는 얘기였다. 부시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하는 럼즈펠드 장관을 향해 “(반대하는) 노 대통령 말을 들어보니 맞다”고 했다. 이때 두 정상이 부딪쳤다면 한·미 동맹 와해론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 그랬더라면…

① 이종석의 퇴임인사 =지난 4월 초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이 노 대통령 지시로 이종석 NSC 차장을 직무조사한 직후, 이 차장은 그만둘 준비를 했다. 사무실 짐을 꾸렸고 직원들에게도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이 차장에 대한 조사는 두 가지 이유로 이뤄졌다. 용산 미군기지 협상이 굴욕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진보적 시민단체 중심으로 계속 나왔고 이게 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합의해놓고 말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국내 시민단체 및 미국 내 일부 인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는 민정수석실과 국정상황실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노 대통령은 이 차장을 내쳐야 할 정도인지 판단하기 위해 조사를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 내 분위기는 이 차장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는 정도까지 갔다.

그러나 조사 결론은 의도적 잘못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때 만약 이 차장이 물러났다면 한·미 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③ 국정원이 확인했다면… =국가정보원엔 2개의 황우석 교수 전담팀이 있다. 경호와 기술보안을 맡은 조직이다. 이곳에 올해 초부터 황 교수 연구결과에 ‘문제 있다’는 식의 정보가 계속 들어왔다고 한다. 그 정보들이 얼마나 구체적인 내용이었는지, 국정원이 진짜 문제를 언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제가 터진 뒤 국정원측은 자체 검증능력이 없어 충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고 청와대에도 보고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때 국정원이 진상조사에 나섰더라면, 얘기는 많이 달라졌을 수 있다.

◆ 안 그랬더라면…

올 중반 정권을 흔들었던 행담도 사건은 노 대통령의 인사 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문정인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은 외교부장관이 될 수도 있었다. 노 대통령이 좋아해 정권 후반기에 중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월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파동 때 연대책임을 지고 청와대를 떠났던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그리 오래 떠나는 게 아니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그를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 전 수석은 행담도 사건에 이어 오포비리 사건에서도 구설수에 오르며 다시 기용되기는 어렵게 됐다. / 신정록기자 jrsh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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