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교과서포럼 심포지엄에서 최문형 교수(오른쪽)가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복룡 건국대 교수(왼쪽)가 토론하고 정성화 명지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이한수기자

“국민의 이념선택 폄하… 오만한 역사쓰기
역대 대통령 사진 없고 北통치자 얼굴만
다양한 전공자들로 집필진 재구성 해야”


“견딜 수 없어 나왔다.” 15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공동 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 심포지엄에 참석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격앙된 목소리였다.

교과서 포럼은 이날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만들어 고등학교에 보낸 ‘학습자료’가 “대한민국 건국을 해방 직후 미군정과 일부 정치세력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정도로 사건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은 또 “(이 학습자료가) 한국인들의 이념적 선택과 실천을 ‘극우 반공 독재에 대한 순응’으로 폄하하는 등 오만한 역사 쓰기 행태”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교과서포럼은 현행 중·고교 교과서의 편향된 이념을 비판하며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올해 1월 창립된 중견 학자들의 모임이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최문형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근·현대사 교과서가) 우물 속에 갇힌 한국사가 아니라 우물 속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국사로 만들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그냥 앉아 있자니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나왔다”며 비감한 목소리였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역사를 쓰겠다니 큰일”이라며 “교육부가 경제사 전문가인 나에게조차 단 한 번도 토론을 제의한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학습자료’는 교육부가 제작, 지난달 22일 전국의 고등학교에 배포했다. 15일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국사교과서가 전(前)근대 위주로 서술돼 있어 역사교육 정상화의 일환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 의뢰해 근·현대사 학습자료를 만들었다”며 “기말고사가 끝난 고교 1년생들을 대상으로 6시간 정도 근·현대사 교육을 하도록 권장하는 교사용 참고자료”라고 말했다.

‘학습자료’ 집필에는 서중석 이이화 박찬승 교수 등 국사학자와 고교 교사 등 모두 10명이 참여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여한 학자들은 학습자료에서 북한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등하게 나열·구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부국에 공로가 큰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은 싣지 않은 교과서가 웃는 얼굴을 한 북한체제의 통치자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 교육부에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따졌다.

박 교수는 “통일은 민족사에 부여된 지상 과제이지만 자유와 인권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통일은 자유와 인권에 바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이 아직도 그와 같은 문명사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북한으로 확대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교과서포럼은 성명서에서 “근·현대사 교과서가 관련 전공자를 배제하고 있다”면서 “과학적이고 공정한 서술을 위해 교육부는 집필진을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전공자들이 개방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문제점’(최문형 교수)과 ‘국사 및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경제사 서술 비판’(김재호 전남대 교수) 발표에 이어 신복룡 건국대 교수,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등이 토론하고 관련 학자와 청중 40여명이 참석했다./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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