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자금 지원을 받는 국제기구들의 대북 원조 사업이 일부 차질을 빚고 있다.

9일 제네바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국제기구들이 마련하는 내년도 사업계획에서 유럽연합 인도주의업무조정국(ECHO)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던 사업들이 제외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달 중순 북한측이 원조의 성격을 ’긴급 구호’에서 ’개발지원’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상당수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들에게 연말까지 긴급구호 사업을 중단하고 인원을 정리할 것을 요구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들은 그러나 북한이 대북 원조 사업의 주요 돈줄인 ECHO의 자금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은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상정한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된 것이 직접적인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CHO는 지난 1996년부터 어린이와 임산부의 영양 개선을 중심으로 대북 원조사업에 돈을 대기 시작했으며 올해까지 원조 총액은 9천200만 유로에 달한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한해 동안 ECHO가 양자 베이스 혹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제공한 지원액은 2천687만 달러로 한국(9천42만 달러)과 일본(4천659만달러)에 이어 3번째로 많았다.

제네바의 소식통들은 국제적십자연맹(IFRC)의 경우, 내년도 대북 지원사업계획서도 ECHO의 자금을 지원 받던 사업이 제외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 소식통들은 전통적으로 해외원조에 인색치 않은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지원금을 제공할 수 있겠지만 ECHO가 손을 뗀 만큼 IFRC의 대북 지원사업 규모와 인력도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IFRC의 내년도 대북 원조 사업 규모는 종전의 6분의 1선에 불과하며 국가별 항목이 아닌, 동아시아 지역 항목에 편입될 것 같다면서 평양에 상주하는 인원도 종전 10명선에서 3-4명 선으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IFRC가 올해 대북 인도주의 사업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총 1천354만 스위스 프랑(124억원). 대북 지원사업 자금 내역을 보면 ▲보건.의료 사업 1천237만 프랑 ▲재해관리 86만 프랑 ▲북한 적십자사의 조직활동 지원 30만 프랑 등이다.

IFRC는 지난 1995년 북한의 기근과 재난이 발생함에 따라 식량원조와 이재민 구호에 역점을 두었으나 1997년부터는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 및 의료 지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소식통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한국 통일부의 자금 지원으로 작성한 내년도 대북 보건 분야 지원사업에도 ECHO가 기존에 맡던 사업이 포함된 것도 ECHO의 자금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북한측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WHO는 남북협력기금에서 매년 1천만 달러를 지원받는 것을 조건으로 ▲북한 군(郡)단위의 의사,간호사,조산원, 관련 공무원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의료장비와 기초 의약품 지원 ▲구급차 제공 등의 사업계획을 최근 마련했다.

제네바의 소식통들은 국제적십자연맹이나 세계보건기구 외에도 ECHO의 자금을 받고 있던 유엔아동기금(UNICEF)의 대북 지원사업도 다소간 수정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지난 91년까지 구소련과 동구권으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아왔으나 이들과의 구상무역 체제가 붕괴되면서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현재 북한의 의약품 조달은 IFRC와 WHO, UNICEF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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