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은 주민들이 해외에서 개별적으로 구입한 남한상품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식량지원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李秉華) 원장은 6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주에 있는 북한 건설사업소의 한 간부가 최근 휴가차 귀국하는 길에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이 건설사업소의 고위간부인 김모(47)씨는 '삼성전자' 상표가 붙은 20인치 컬러TV수상기와 `신성'이라는 제조회사 이름이 붙은 전기 프라이팬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국경세관에서 남한업체의 상표가 붙은 상품을 전혀 회수하지 않아 공개적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 건설사업소에서 근무하는 6년동안 남한 상품이 마음에 들어 사고싶어도 세관에서 무조건 회수하는 것은 물론 국가안전보위부 등에 잡혀갈 수 있기 때문에 상표를 뗄 수 있는 일부 물건에 한해서만 몰래 사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경세관에서 남한상품을 전혀 회수하지 않아 북한의 해외근무자들은 외국에서 공개적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집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는 남한 돈으로 환산할 때 삼성전자의 20인치 컬러TV를 53만원, 신성의 전기프라이팬을 4만7천원 주고 샀다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건설사업소 다른 간부들과 노동자들도 남한제품을 많이 구입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또 자신이 사는 평양시내 한 아파트의 각 가정에는 '대부분 TV가 있지만 컬러TV는 3분의 1정도이고 특히 20인치는 없다'며 몹시 자랑했다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북한이 남한에서 생산한 컬러 TV 등 전자제품을 공공기관이나 건물에 설치했지만 주민 개개인의 집에서도 남한제품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당국은 그동안 남한상품을 개별적으로 쓰다가 발각될 경우 `정치범'으로 간주하는 등 엄격한 처벌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의 해외근무자들은 상표를 떼어내 사용할 수 있는 의류 등에 한정해 남한제품을 구입해 왔다고 탈북 외교관들은 전했다.

따라서 김씨의 주장처럼 북한당국이 남한제품을 주민들이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분명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주민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이라고 이들은 분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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