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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는 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의 위폐·인권 문제 등을 들어 김정일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범죄·불법 활동을 하는 정권’, ‘암울한·실패한 정권’ 같은 표현까지 썼다. 이에 한국 정부도 발끈했다.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사의 ‘입조심’을 주문했다.

◆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북한 정권을 언급하면서 ‘범죄(criminal)’라는 표현을 7번이나 썼다. 그는 “북한은 히틀러 이후에 남의 나라 돈을 위조하는 초유의 정권”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북한 주민들은 기아로 고생했고, 정치적·경제적 자유가 허용되지 않고, 정치수용소가 존재하고 있으며, 바깥 세계의 접근도 제한돼 있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 등 현 미국 행정부 전반에 깔린 북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는 ‘김정일을 폭군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이름 붙이지 않겠다”면서도 “북한 정권이 실패를 했음에도 개혁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있다”고 했다. “2002년 북한이 제한적이지만 개혁을 도입한 것은 체제 모순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 외교부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알려지자 비상이 걸렸다. 1주일간 유럽을 방문했던 반기문 장관은 입국하자마자 “표현을 자제하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외교부는 “미 대사 발언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며 브리핑을 자청했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주한미국 대사가 주재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들 했다.

◆ 달러 위조 문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한 금융제재 문제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도 버시바우 대사는 우리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미국법에 따라 취해진 경제제재는 협상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며 “돈세탁, 달러 위조 등에 대한 미국법의 집행이 6자회담의 이슈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신들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선 “이를 통해 우리는 북한의 불법활동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북한이 정권 주도하에 마약밀매 등을 하는 상황에서는 정치적으로 제재를 풀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애국법 등 미국법에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북한의 행위를 단속할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도 했다. 위폐 문제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이므로, 이를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삼아 협상을 하려는 북한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불법 활동이 단기 수익을 올리는 데 일조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의 핵심 이익을 저해하고 손상시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정부도 기본적으로 북한이 이 문제를 6자회담과 연계하는 것에는 불만이다. 그러나 “6자회담을 이어가려면 북한에도 어느 정도 명분을 줘야 할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미·북이 어떤 형식으로든 만나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 북한인권 국제대회

8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대회를 보는 한·미 양국 정부의 태도는 정반대다. 미국은 이번 회의를 북한 인권 개선을 향한 노력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반면, 한국 정부는 가급적 ‘조용히 끝나기’를 바라는 눈치다. 미국 정부는 간접적으로 예산도 지원했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북한인권 대회에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모든 당사자들이 참석하기 바란다”고 했다.

또 통역이 이번 국제대회를 계속 ‘서울 포럼’으로 번역하자, “서울서밋(summit·정상회의)”이라고 고쳐주기도 했다. 흔히 비중 있는 국제회의를 ‘서밋’으로 부르는 수사를 이번 회의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또 “동맹국으로서 공동 목표를 갖고 있어도 접근법은 다를 수 있다. 인권문제가 그렇다”고 말해, 한국 정부와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 정권의 변화의 척도로, “북한이 더 이상 불법 활동과 외화 위조를 하지 않고, 한반도 및 중국·러시아에 위협이 되고 있는 마약밀매를 더 이상 하지 않는 등 문명국의 기준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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