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基
편집국 부국장

‘통일’은 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혼란은 우리 사회에 별로 없었다.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까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꾸밈 없는 열정으로 불렀다.

그 통일은 어떻게든 결국 북한 공산독재체제가 없어지고 우리 남한의 체제가 한반도 전체로 확산되는 형태의 것이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지금도 규약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의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 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바로 한반도 전역을 그들 체제로 붉게 물들이는 적화(赤化)통일이다.

이런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턴가 저마다 사용하는 ‘통일’의 개념에 상당한 혼란이 생겨나고 있다. 이젠 ‘통일’에 관해 통일된 개념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통일전쟁이었던 6·25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내에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통일’은 북한식 공산통일임이 자명하다.

6·25가 ‘통일’을 위한 김일성의 남침이었음을 인정한 셈인 강 교수가 지난 2001년 8·15 평양축전 기간에 북한을 방문,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에서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라고 썼을 때의 ‘통일’도 같은 뜻이었을 것이다.

지난 8월 북한 월간지 ‘금수강산’에 소개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후 남한 언론사 사장들의 방북(訪北)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했다는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덮어놓을 것은 덮어놓고 조국통일 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자”는 대목의 ‘통일’은 다른 뜻이었을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지난 8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자유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행사 참석차 왔던 북한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김기남 부위원장이 김원기 국회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국통일 사업에 국회가 커다란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을 때의 ‘통일’은 또 무엇이었는가.

지난 8월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와 주한미군 철수 주장 시위를 벌였던 ‘한총련 통일선봉대’의 이름에 들어있는 ‘통일’은 우리의 전통적 ‘통일’ 개념과 조금이라도 겹치는 부분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지난 11일 평양 능라도의 5·1 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본다며 올라간 남한 진보단체 참관단 200여 명이 입장하면서 “조·국·통·일”을 큰 소리로 외쳤고 관중석의 북한 주민들이 기립 박수로 맞이했을 때의 그 ‘통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북한 지도부의 진짜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공식적으로 남한에 대해 내놓고 있는 것은 ‘고려 연방제 통일’이다.

남과 북이 각각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남북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통일정부를 세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이 따로 있으면서 하나’라는 것은 모순된 말의 유희일 뿐, 진정한 통일일 수 없다.

남한은 5년마다 대통령을 바꾸는 체제인데, 북한에서는 세습 독재체제를 계속 유지시키는 형태의 ‘통일’이 가능한가? 그게 무슨 통일인가.

중구난방(衆口難防) 식으로 ‘통일’을 떠든다고 통일이 앞당겨지는 게 아니다. 통일부는 헌법의 ‘영토 조항’ 개정을 말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사회적 합의를 단단하고 두껍게 쌓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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