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략물자반출규정이 남북관계 업그레이드의 장애물이 될 것인가.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관계자가 노트북을 가지고 평양으로 돌아가려다가 국가정보원에 적발돼 압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국정원은 18일 “인천지역 시민단체 간부가 북한측에 대북 반출금지 품목인 노트북 등 5종 7점을 은밀 제공한 사실을 포착했다”며 “북측 관계자로부터 물품을 전량 회수해 정밀검색했으나 국가기밀 등이 입력되지 않은 신품인 것으로 확인하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가 없어 경찰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해 ’뉴라이트전국연합 인천연합’은 노트북을 건넨 사람에 대한 구속을 요구했다.

노트북의 반출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민수용과 군수용 양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물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가입돼 있는 바세나르 규정은 공산권 국가에 대한 이중용도 물자의 반출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실 교육용이나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컴퓨터의 반출에 대해서는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정해놓고 있고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486급 이상의 컴퓨터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EAR은 미국의 기술이 10% 이상 사용된 제품의 테러지원국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는 반출업체에 대해서는 대미수출 등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게 된다.

개성공단 진출 업체의 각종 장비 반출에 앞서 미 상무부의 심의를 받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 근거한 것이다.

일단 개성공단 진출업체의 장비의 경우, 최종용도가 남한기업의 생산과정에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반출이 부분적으로 허용됐고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도 작년 8월 미국을 방문해 이 같은 점을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풀려서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이 문제는 경제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이 아니고 북한이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으면 북한은 컴퓨터 등을 구할 수 없는 것일까.

남북간에 열리는 각종 회담에 참가하는 북측 회담 관계자들의 어깨에 걸린 노트북 가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질문에 대답은 ’아니다’이다.

최근 들어 중국 등지에서 컴퓨터가 북한에 반입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기업체는 북한에서 컴퓨터 생산공장을 합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대안친선유리공장 같은 대규모 공장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중국측이 전략물자반출문제로 고민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은 바세나르 가입국이 아닐 뿐 아니라 북한에 컴퓨터 등을 반출한 중국기업이 대미수출 등과 관계가 없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은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협력사업을 하기 위해서 남한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기업에게 손을 내밀도록 떼밀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남한과의 적극적인 경제협력을 원하고 있지만 ’전략물자반출규정’이 남한기업의 대북진출에 장애를 만들면서 결국 북한의 대중국, 대러시아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 상황이 조성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90년대 말 북한에 486급 중고 컴퓨터를 교육용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다 전략물자반출 규정에 막혀 중도 포기한 대북지원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관계자는 “컴퓨터 반출 금지 등은 남북관계 현실에 비춰 시대착오적인 규정”이라며 “이제 산업용이나 인도적 지원용, 교육용 반출에 대해서는 허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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