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서적 및 영상물에 대한 공항 세관의 유치 조치로 방북자들과 잦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북한 자료 반입 규정을 과감히 완화 혹은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공항 세관이 방북자의 불편을 감안, 최근 전수검사에서 선별검사로 전환한 것으로 전해지고는 있지만 북한 자료에 대한 유치 조치는 여전해 방북자들의 민원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 12∼13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기행전문가 이재호(48)씨는 노래집 ‘조선의 노래’와 ‘고려의 옛수도 개성’, ‘평양 전도’ 등 북한 서적을 들여오려다 공항 세관에서 유치를 당했다.

최근 고도(古都) 경주의 문화유적을 안내하는 두 권의 책을 펴냈고 장래 북한 기행 서적을 써보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던 이 씨는 상식적으로 정치색과는 무관해 보이는 자료까지 관련 규정을 이유로 반입을 금지한 세관측의 조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민속학자 주강현 박사도 지난 9일 평양을 방문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환하는 과정에 세관 검색대에서 ’조선의 민속놀이’ 비디오 테이프 2개를 유치 당했다.

세관은 방북자들이 지닌 북한 자료가 시중에도 판매가 가능한 일반자료로 분류됐는지 아니면 접근이 제한되는 특수자료로 분류된 것인지 조차도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유치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행정 편의주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씨는 “정부가 보기에 정말 불온서적이라면 빼앗겨도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현장에서 공무원이 판단해 돌려줄 수 있는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통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특수자료가 아닌 일반자료로 분류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세관에 관련 목록을 보내주지 않고 있어 일단 공항에서 유치가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방북자들은 북한의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의 경우 관람 및 촬영은 막지 않으면서 공연 실황을 녹화한 아리랑 CD를 특수자료로 분류하고 반입을 막는 조치는 정부 스스로 단속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자인하는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아리랑 공연은 시작 전부터 2002년 공연을 능가하는 볼거리가 될 것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공연 초기 방북자들이 촬영해온 녹화실황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수차례 소개됐다.

14∼15일 전세기편으로 평양을 다녀온 홍원식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사무처장도 “공항 세관에서 아리랑 CD를 가지고 들어온 방북자에게 보관증을 써주고 아리랑 CD를 여전히 유치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북한 자료 반입 및 취급을 제한하는 근거인 통일부 고시 ‘남북한 왕래자의 휴대금지품 및 처리방법’은 1999년 5월 마지막 개정됐고 ‘특수자료 취급지침’도 2003년 7월 이후 바뀌지 않아 남북관계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헌을 문란하게 하거나 국가안보.공안 또는 풍속을 해할 도서.간행물.영화.음반.조각물 기타 이에 준하는 물품’이라는 반입 금지 기준도 모호해 정부의 편의에 따라 규제 일변도로 해석될 소지를 안고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이제는 해외에 개설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북한의 매체나 출판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로 변했다”며 “우선 학자나 연구자부터 특수자료에 대한 접근 제한을 완화하고 이를 일반인에게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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