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9월24일 미 해군정보국(ONI)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이 한국에 국가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로버트 김이 체포되자 당시 한국정부는 “우리와는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다. 미 사법당국에 넘어간 이상 미국 법 집행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등의 방관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결국 로버트 김은 1997년 7월 간첩죄의 일종인 ‘국방기밀취득음모죄’로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1940년 부산에서 태어난 로버트 김은 대학을 졸업한 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 우주항공국(NASA)을 거쳐 1978년부터 미 해군정보국(ONI)에 취업해 19년간 컴퓨터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했다.

1996년 동해를 통해 강릉으로 침투한 북한 잠수정이 좌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로버트 김은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 관련 정보를 백 대령에게 건네줬다.

로버트 김이 백 대령에게 전달한 정보들은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실태나 북한의 무기 수출입 현황, 북한해군의 동향 등 한국정부가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FBI는 로버트 김과 백 대령을 몰래 감청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고 로버트 김은 96년 9월 국방기밀 누설혐의로 체포됐다.

FBI는 로버트 김이 컴퓨터 전문가로서 전산망을 통해 ‘극비(top secret)’ 또는 ‘비밀(secret)’로 분류된 미 해군의 기밀문서에 접근해 30여건 이상의 정보를 백 대령에게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김은 변호인들의 조언에 따라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징역 3∼5년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국방기밀취득음모죄로 법정최고형인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로버트 김이 조국을 위해 정보를 건네다 미국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는 1997년 국회의원과 종교계 등이 모인 로버트김 구명위원회가 조직됐으며 1999년에는 로버트 김의 고향 여수에서 구명위원회가 조직돼 구명운동에 나섰다.

2002년 2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자 한국 외교부에서 로버트 김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했으며 2003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중 로버트 김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기도 했다.

로버트 김은 7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가택수감 생활을 해 왔으며 이달 4일(현지시각) 미 버지니아주 동부지방법원이 로버트 김의 보호관찰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당초 2007년까지로 예정됐던 보호관찰을 끝내고 9년8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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