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국제기구 요원들에게 철수를 요구함에 따라 평양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전용 바'도 곧 문을 닫게 된다고 외신이 전했다. 외국인 바가 있는 평양 만수동의 세계식량계획건물. 사진은 전 소장인 데이비드 모튼씨./조선일보 DB

외국인들 전용 바 ‘RAC’ 곧 문닫아

평양의 단 하나뿐인 외국인 전용 바(bar)가 조만간 문을 닫을 예정이다. 북한 당국이 최근 인도적 지원 사업을 벌이던 국제기구측에 “내년 1월까지 떠나라”고 통보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영국의 가디언지가 3일자 기사로 전했다.

현재 북한 전체에는 약 300명의 외국인이 상주하고 있다. 이 중 90% 이상은 국제기구 소속 직원들이다. 나머지 10%는 사업상 오가는 사람들, 북한 당국이 초청한 5명의 영어 교사들, 그리고 어쩌다 방북 허가를 받고 들어온 서방 기자들이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평양의 외국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세계식량계획(WFP) 평양사무소 안에 있는 방에서 모임을 가져 왔다. 정식 이름은 아니지만 평양의 외국인들은 이곳을 ‘RAC’라고 불러왔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RAC’는 ‘Random Access Club’(허가받지 않고 출입할 수 있는 클럽)의 약자다. 북한에 식량지원을 책임진 WFP가 북측에 요구했던 ‘No access, No food’(확인하지 않으면 식량지원도 없다)에서 따온 말이다.

RAC는 외국인들이 북한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던 셈이다. 신문은 “RAC는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한 나라 안에서 그나마 현대적이고 정상적인 것들로 채워진 오아시스였다”고 전했다.

국제기구 직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구석구석을 찾아 일반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일반주민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WFP 관계자는 “처음에는 바로 외면하던 북한 주민들도 최근에 와서는 반갑게 미소로 맞는 등 분위기도 바뀌었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외국인들에 의해 ‘주체사회’가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지는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다고 말했고 식량분배 현장도 북한 당국이 연출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수년간 있었던 사람들조차 “북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가디언지는 국제기구 직원들을 인용해 “지금처럼 RAC의 분위기가 어두웠던 적은 없다”고 했다. 내년 이후에는 외교관과 식량지원 기구 직원 몇 명만이 평양에 남게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분위기는 1994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올해 말이면 평양 시장에는 국제기구 직원들이 쓰다 버리고 간 중고 냉장고와 중고차가 나오겠다는 농담이 유행”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안용균기자 ag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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